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Cyber
헌재의 네이스 합헌 판결을 비판하며...

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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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으로부터 나오는 기본적 인권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간섭하지마”로 요약되는 자유권적 기본권과 “이것 좀 해줘”로 요약되는 사회권. 근대의 기본권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자유권적 기본권은 원래는 부르주아가 주장하던 권리이다. 국가는 시민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하고 만약 시민사회를 간섭하려면 시민사회가 선거로 선출한 대표들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부르주아가 만든 근대 헌법의 요체이다.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있다. 골치아픈 분배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국가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유권적 기본권은 보장된다. 따라서 재정 등 국가에게 여러 가지 현실적인 급부의무를 부담시키는 사회권과 달리 자유권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도 엄격하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자유권 최대한 보장의 원칙 - 사회권 최소한 보장의 원칙’ 이라는 기준을 오래전부터 확립해왔다. 헌법재판소에 요구되는 가장 최소한의 역할은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한 엄격한 감시자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 헌법재판소는 이 역할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는가?

우리사회의 정보인권에 대한 촉매제 역할을 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일명 네이스)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지난 7월에 선고되었다. 질질 끌다가 사회적 논의가 하향세에 접어들었을 때 슬그머니 결정문을 내놓는 늦장을 탓하는 거 이제 입 아프다. “위헌결정 할 거 아니면 후다닥 해치우고 그냥 욕 좀 먹어라”라는 충언만 보태기로 한다.

8인 합헌, 1인 위헌의견으로 합헌결정이 났다. 네이스에 대한 이전까지의 사회적 논의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순전히 법리적으로만 접근해 보기로 하겠다. 쟁점이 되었던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 네이스가 법률에 근거한 제한인가? 법률에 근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대상은 누구인지, 어느 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는지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예상하겠지만, 우리나라 법률 중 네이스의 시행과 관련하여 명확하게 규정하는 법률 없다. 다만,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이하 ‘개인정보법’이라 부르겠다) 제 5조에 “공공기관은 소관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개인정보파일을 보유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합헌의견은 ‘개인의 인격에 밀접히 연관된 민감한 정보인가’라는 기준에 따라, 그러한 정보는 법률적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하고 그러하지 않은 정보의 경우에는 특별히 수권규범의 명확성이 그렇게 강하게 요구되지 않는다는 논리 조작을 시도한다. 다음 결론은 보나마나다. “네이스에 포함되는 개인정보는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정보가 아니다.” 따라서 개인정보법 제 5조와 같은 두루뭉실한 제한 규정(이를 흔히 일반적 수권규정이라고 부른다)에 근거해도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는 것이다.

정보보호법이 정보이용법으로 또다시 탈바꿈한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니 넘어가더라도 어떻게 ‘인격에 밀접히 연관된 민감한 정보’가 두부 모 자르듯 깔끔하게 판단되는 것인지 다시 한번 헌법재판관들의 능력에 감탄을 보낸다. 필자는 “정보에 사소한 정보는 있을 수 없다”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극복하지 못하겠다.

두 번째 비례성의 원칙을 준수하였는가? 즉 네이스가 행정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보유하는 것인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조치 등이 있는지, 네이스가 시행됨으로써 얻게 되는 공익이 우월한가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합헌의견은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 편리한 민원서비스의 제공 등의 공익이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라고 보기 어려운’, 다시 이야기해서 네이스 보유 정보보다 우월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졸업증명서 발급이라는 정도의 민원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하여 교육인적자원부 차원에서 개인정보들을 전산시스템에 집적하여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가? 과연 그 시스템 개발 등에 드는 비용과 개인정보인권의 침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실현해야 할 우월한 공익인가? 그 공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늘 궁금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친절히 답해주지 않는다. 시민을 가르치는 자세를 지양하는 겸손 정도로 선의해석하겠다. 이쯤 해두자.

최근에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에게서 “만약에 외국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우리나라에 도망을 온다면 그건 자살행위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고도로 통제되어있는 정보인권의 후진국이다. 헌법재판소의 성향이 보수적이라 이번 판결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는 말은 틀리다. 감히 “국가 니까짓게 뭔데 원래부터 고귀한 내 정보를 함부로 수집해?”라는 보수적인 접근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한 어조로 반대의견을 개진한 권성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에서도 대표적 보수파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결정은 전적으로 정보인권이라는 자유권에 대한 무지의 소산물이다.

아무튼 ‘인권수호의 최후보루’라든지, ‘헌법의 마지막 수호자’라는 절박함으로 헌법재판소를 쳐다보는 것은 자기 생명을 단축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생 짧은 데 더 재촉할 필요 있나. 간단히 헌법재판소는 우리 세계의 저 너머에 있다라고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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