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사이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겸허함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기 위하여...

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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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여성단체에서 주최하는 활동가 대상 강좌에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크고 무거운 제목으로 해야 했던 강의라 등골이 휘었던 데다가, 수강생들 대다수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었기에 부담감은 더욱 컸다. 어찌저찌 강의를 마치고 조별토론결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 그런데 한 조에서 발표된 이야기 중에 몹시 불편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여성학 하시는 분들 중에 독신이 많은데, 사실 여성들의 경험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분의 발표였다. 익숙한 이야기, 그러나 들을 때마다 열 받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성별과 인종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하고, 그 다음엔 나이, 학벌, 결혼 여부를 확인한다. 20대 후반까지 질문의 순서는 나이, 학벌, 그리고 어쩌다가 결혼여부였다. 하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순서는 확실히 바뀐 듯 하다. 우악스런 학벌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겐 결혼여부가 더 큰 관심사였고, 어떨 땐 나이조차 건너뛰고 결혼여부부터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의 할 기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빠짐없이 받는 질문 역시 “결혼 했느냐”는 질문이다. 결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쭉 결혼하지 않고 살 예정이라고 말하면, 뭔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끄덕이곤 한다. 이런!

결혼을 해야 진정한 여성억압의 실체를 알 수 있고 성숙한 여성학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좀 꼬인 심정으로 반문하자면, 기혼여성이라는 위치가 그토록 억압이라면 왜 당신은 결혼했으며 또 왜 남에게 결혼하라고 권하는 건지? 그게 아니더라도, 계급과 국적과 장애와 성정체성과 인종을 둘러싼 권력의 경계가 교차하는 사회에서 특정한 여성 집단의 경험만이 ‘진정한’ 여성억압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그러한 방식의 특권화된 자리를 허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떤 기혼여성은 결혼하지 않았으면서 남편과 시부모와 아이들 때문에 겪는 고통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신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해서 당신이 잘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요는,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삶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므로,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존중과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결혼한 삶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에 특권이 부여되는 맥락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미혼(未婚)과 기혼(旣婚) - 즉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 분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가족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어른’은 결혼과 가족제도 속에서 인준되고 확장되는 신분이다. 기혼여성과 기혼남성 사이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기혼여성과 비혼여성 사이에 작동하는 권력은 서로 다른 종류의 분석과 성찰을 요구한다.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여전히 평균임금이 남성의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여성의 경제적 현실 속에서, 이도저도 안되면 ‘결혼이라도 할까’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사실 많다. 혹자는 이것을 ‘생각 없군’, ‘역시 여자들은 좀 의존적이야’ 라는 식으로 분석해 왔고 나도 한때는 그런 여자들을 답답한 심정으로만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는 결혼은 분명 도피이고 안주이다. 하지만 그 만큼 유혹적인 특권을 결혼제도가 부여해 주기 때문에 여자들이 결혼으로 ‘도피’하고 ‘안주’할 수 있다. 결혼했다는 것, 한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 아니었던가.

애초에 “결혼을 해봐야 어른이 된다”는 명제는, 여성주의가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관계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와중에 언급했던 내용이었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명제는 “군대에 갔다 와야 남자가 된다”는 명제처럼 개인이 특정 제도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정상적인’ 어른/남자/국민의 권리를 부여하겠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다 같이 결혼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자”거나 “여자도 군대가서 똑같은 국민이 되자”는 주장이 아니라, 정상/비정상, 국민/비국민을 나누고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적 권력관계를 해체하기 위해 안팎의 목소리들을 모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위치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 나와 다른 위치를 갖고 있는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 ‘다름’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권력 과정에 대해 알고 개입하고자 하는 것. 이런 깨달음들이, 여성주의를 통해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 간다고 믿는다. 다음번엔 “결혼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의 대답과 함께 대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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