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장애없는
“우리는 텍스트 파일을 원해요”
저작권법 개정나선 시각장애인 대학생들

소장섭  
조회수: 4048 / 추천: 58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대학공부를 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대학공부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공부는 교과서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를 수시로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은 현재 교과서조차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처지이다.

지난 8월 12일 방송통신대학 시각장애인동호회 소속 20여명이 서울 동숭동 방송통신대학 정문 앞에서 교과서 접근성과 관련한 시위를 벌였다. ‘학습보장’이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시위에 나선 이유는 교과서를 쉽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송통신대학의 경우 현재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점역용 비비에프(BBF) 파일과 엠피스리(MP3) 파일로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BBF파일의 경우, 점자책으로 제작하거나 점자단말기로 열어야 한다. 점자책으로 제작하게 되면 부피가 일반 책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책 한권을 갖고 다니기도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점자출력기가 있는 곳도 제한돼 있고, 별도의 출력비용이 추가된다는 것도 단점이다.
점자단말기로 파일을 열게 되면 좋지만 일단 점자단말기의 가격이 최소 500만원이 넘어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는 노트북이나 가정용 컴퓨터의 2~5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또 점자셀이 한줄 밖에 되지 않는 등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시각장애인들의 설명이다. MP3 파일의 경우는 컴퓨터나 MP3전용 단말기로 열 수 있으나 단어 검색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선호하고,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파일은 바로 텍스트 파일이다. 텍스트 파일은 검색과 편집이 자유롭고, 점역용 파일과 MP3 파일로 변환이 아주 쉽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다. 대다수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로 텍스트파일을 BBF, MP3 파일로 변환할 수 있어 학교 측에서 별도로 BBF, MP3 파일 변환하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텍스트파일의 경우 정보가 무단으로 이용될 위험도가 높다. 이에 따라 저작권법에 위촉될 수 있다는 논란이 있다. 현행 저작권법 30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해 점자로 복제·배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하거나 시각장애인 등 전용 기록방식으로 복제·배포 또는 전송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저작권법 23조는 고등학교 및 이에 준하는 학교이하의 학교의 교육목적상 필요한 교과용도서에는 공표된 저작물을 게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와 같은 저작권법을 조금만 수정하면 텍스트 파일 교재를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이 쉽게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0조 시각장애인 전용기록방식과 관련해 교재의 경우에는 텍스트 파일로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추가하고, 23조 학교의 범위를 시각장애인을 두고 있는 학교 또는 대학까지 넓히면 된다는 것.
이들은 저작권법에 텍스트 파일을 제공받은 당사자가 시각장애인 사이트가 아닌, 즉 일반 포탈사이트 등에 무단으로 저작물을 올리게 됐을 경우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을 추가해 악용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스캐너, 디지털 카메라 등이 발달해 텍스트 파일보다 스캐너나 디지털 카메라로 이미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확산 속도나 유용도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림도 빠지고 다양한 글자의 크기의 중요도를 나타내는 기능도 없고 머리말이나 꼬리말 등의 표현도 부자연스럽고 단조로운 글씨만 있는 텍스트 파일은 이미 유출의 필요성이 절감됐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동영상을 제작해 관련 언론이나 대학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정보 환경의 변화로 텍스트 무단이용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 시연해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전국에는 약 500~600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대학공부를 하고 있으며, 이 중 방송대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만 170여명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공부하고 있는 대학이 바로 방송대인 것이다.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에 방송대가 앞장서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대는 여전히 저작권법과 교재 저자의 동의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법을 고치는 데는 정부와 국회가 속히 나서줘야 할 것이다.
사실 법을 고치지 않더라도 학교 측이 나서서 교수들의 동의를 구하면 교재를 텍스트 교재로 변환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대는 지난 2003년부터 시각장애인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동의를 구하는 공문을 발송하지 않은 것으로 최근 방송대 시각장애인동호회 측에서 확인했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수십 년간 연구해온 업적이 담긴 교수님들의 저작권물인 교과서에 대해 저작권을 고의로 침해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며, 우리 시각장애인들 역시 교수님들이 집필하신 교재로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로서, 교수님들의 저작권은 당연히 보호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을 이유로 이들의 요구를 외면한 교수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600여명밖에 되지 않는 교수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한 달이 걸릴까? 두 달이 걸릴까? 방송대는 저작권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교수들의 동의를 얻어 당장 급한 불을 꺼야할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목소리를 높여 공부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데 이를 애써 우리 사회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의아할 따름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