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교육과
일상화된 폭력과 학교, 그리고 Ⅰ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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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초, 경찰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학교 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좁은 의미의 물리적 폭력에서부터, 넓은 의미의 정신적 폭력까지, 학교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적 구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그 폭력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학교의 폭력성이라고 한다면, 그 체제의 문제가 우선일 것이다.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게끔 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폭력이다. 또한 그것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단으로써의 폭력이 필요해진다. 결국 학교는 그것이 교칙이 되었건 아니건 강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폭력적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심화될 경우 학교는 작은 집단으로서의 파시즘을 형성하게 된다. 내가 아닌 전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는 무시하거나 탄압받아야 하는 군국주의적 문화가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그럼 학교를 안다니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물론, 최근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폭력성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안다면 그런 소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 속의 작은 파시즘적 요소들은 우리를 둘러싼 채 자신과 다른 존재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주류 사회로부터 매장당하는 느낌을 -그 느낌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억지로 학교를 다닌다 - 받을 뿐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건 간에...

폭력적인 집단에는 반드시 그 폭력성을 유지하기 위해 좁은 의미의 폭력을 발휘한다. 파시스트 국가는 경찰과 군대로, 군대는 얼차려와 초헌법적인 군법으로, 학교는 폭력과 교칙으로 강제성을 유지한다. 결국 학교는 학생들을 강제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게 되는 것이고, 그 폭력의 최전선에는 항상 교사들이 있다. 교사들에 의해 벌어지는 폭력적 상황을 그대로 답습한 학생들은 자신들에게도 그 상황을 그대로 적용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이런 상황에서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말은 사회 속에서 범죄를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말과 같이 허황된 것이다. 구조적 모순을 가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의 모든 폭력적 상황을 해제해야만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친인권적 상황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찌들어서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돌아보지 않고, 결과만 좋다면 폭력을 사용하든 협박을 하든 범죄 행위를 저지르든 문제 삼지 않는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한 학교의 폭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 그것도 천민자본주의 하에서 고급 노동력을 의도적으로 양산해야 하는 현 구조에서, 학생들의 인생을 70-80% 결정하는 입시제도 속에서 어떤 돌파구가 있겠는가? 친인권적 상황이 학교에서 가능하겠는가? 학교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어렵지만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을 바탕으로 해결지점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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