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영화
이번엔 여고생이라며?
몽정기2 (정초신, 2005)

이지연  
조회수: 13090 / 추천: 63


솔직히 고백한다. 너무 쉬운 영화를 골랐다. 여기서 말하는 쉬운 영화란 그저 씹어대기 너무 쉬운 영화를 선택했다는 말이다. 쉽게 가려다 망연자실 상태에 놓여있음도 고백한다. 하지만 변명을 달자면, 제목 ‘몽정기’부터 헤드카피 ‘이번엔 여고생이다!’까지 한가지는 밀어붙이는 뭔가가 있어 보여, 그 한가지를 어디까지 밀어붙이는지 보기위해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나의 방만한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처구니’가 없다.

맞다, 헤드카피 하나는 잘 뽑았다. 말 그대로 이번엔 여고생이다.

성에 대해 무지한 오성은(강은비)과 그의 친구인 방수연(전혜빈), 김미숙(박슬기)은 성은의 언니결혼식 후 그들의 첫날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성에 대한 호기심을 나눈다. 그런 여학교에 강봉구(이지훈)라는 체육교생이 나타나고 운명의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성은은 그에게 끊임없는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하지만 일이 순탄치만은 않을터(선생이 사랑을 받아주든, 그렇지 않든), 같은 반의 탤런트이자 여고생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섹시한 경쟁자 백세미를 만난 성은. 이 둘은 강봉구를 두고 내기를 시작한다. 바로 강봉구와 먼저 자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는 것. 자, 영화는 대책없이 흘러간다.

영화를 보던 내내 석연치 않은 것이(무엇하나 석연한 것은 없다!) 있었는데 소품으로 등장하는 하이틴 잡지와 맥주, 영화포스터 등의 상표가 80년대 것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누가 보아도 바로 지금, 현재의 여학교이다. 영화<품행제로>에서 보여줬던 소품의 재미를 나름대로 재현하려는 것이려니 눈감아주려하다 그것 또한 변명의 장치임을 깨닫고 만다. 현재를 살고 있는 여고생이라면 간편한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이 대가없이 제공해주는 모 사이트의 ‘지식인’ 창에서 무궁무진한 성에 대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다. 순진하다못해 무뇌아가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들게 하는 주인공들은 2000년대의 겉모습을 하고 감독의 시대착오적인 상식에서 제공한 1980년대의 공간에서 우왕좌왕한다.

영화 <몽정기2>는 여학교를 배경으로 여고생들의 성에 대한 에피소드가 즐비한 영화다. 하지만 그 성에 대한 에피소드라는 것이 여성이 아닌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된 에피소드라는 것에 심각함을 느낀다. 탤런트인 백세미가 복장이 불량이어도 담임인 남자교사는 귀뒤로 머리를 쓸어주고 엉덩이를 툭툭치며 묵과한다. 그런 모습에 성은과 친구들은 교사의 부당함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몸매가 섹시하지 않음에 분노한다. 여고생들의 자위행위가 유행이라는, 어찌보면 앞서가는 설정을 가져다 놓고 초경도 못한 여고생이 임신을 했다고 걱정하며 사랑하지만 학생이니 낳을 수 없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일관한다.(2000년대 여고생은 물론 80년대 여고생도 선생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제 몸을 내어주지는 않으며 그런 친구에게 응원을 보내는 사이코적 의리를 지닌 여고생은 이땅 어디에도 없다! 감독이 제시하는 이 에피소드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또한 피임법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성교육하나 마련되지 않은 교육실정과 예나 지금이나 사라지지 않는 학원폭력, 동성간의 애정 등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많으나 그저 방수연이라는 학생 입에서 툭툭 뱉어질 뿐이며 대안의 제시도 그렇다고 제대로 된 조망도 없이 참 많이도 건드리고 있다. 거침이 없을 듯한 제목도 헤드카피도 안타깝기만 하다.



<몽정기2>를 보고난 후 지니게 되는 씁쓸한 기운은 비단 이 영화 한편 때문만은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고 있는 그 나이또래가 주인공인 영화는 다양하게 제작되어왔다. 하지만 매번 그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과잉된 자의식을 지녀 보는 이마저 답답하게 하거나 지난 한시기의 향수를 대변하는 매개체로 소비되어지거나 정서도 시대의식도 제거된 상품으로 이용될 뿐이다. 그나마 침착하게 그 나이또래 아이들을 따라간 <고양이를 부탁해>는 현재 아이들의 고민과 정서와 동떨어져 동질감을 일으키지 못했고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불안한 아이들을 보여주는 <발레교습소> 또한 온전히 아이들에게만 집중하지 못하고 <여고괴담> 시리즈의 아이들은 공포라는 장르안의 소재로 머문다.

10년 남짓 지난 나와 내 친구들의 청소년기 모습은 영화 속 누구와 닮아있던가? 성적과 대학으로 인한 스트레스, 이성에 대한 고민, 끊임없이 치솟던 성적 호기심과 빈약한 가슴으로 친구들과 깔깔대던 나와 우리와 또 현재의 아이들은 지금 영화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공효진이 연기하던 조연들이 우리의 모습과 가장 일치한다. 이렇듯 우리의 모습은 항상 영화 속 주변부에서 머물고 있다. (그 주변부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있다면 여고생인 유소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보여줬던 (D-?)라는 다큐멘터리정도 이다) 매순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우리의 십대시절을 만나고 싶다. 시대가 바뀌고 나이가 들고 유행과 매체가 바뀌어도 십대의 고유한 정서를 대변하는 진정한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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