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표지이야기
P2P, 존폐의 기로에 서다!
소리바다, 카자, 그록스터 등 법정에서 잇따른 패배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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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서울지방법원은 MP3 음악 파일 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http://www.soribada.com)에 대해 프로그램 배포 및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지난 2004년 11월 한국음원제작자협회(아래 음제협)에서 소리바다를 상대로 신청한 ‘음반복제등금지가처분신청사건’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소리바다 운영자는 소리바다 이용자들이 P2P 방식으로 MP3 파일을 공짜로 복제하고 다른 이용자들과 이 파일을 공유하는 것은 복제권과 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소리바다에서 제공하는 소리바다3 프로그램의 이용자들이 소리바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제협 음원이 들어 있는 MP3 파일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 하도록 해서는 안되며, 소리바다 사이트를 통해 소리바다3 프로그램을 배포하거나 프로그램의 실행을 통한 MP3 파일의 공유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서울지법, 소리바다에 대한 서비스 중지 판결

지난 2000년 5월 서비스를 개시한 소리바다는 그 동안 몇 번의 고비를 넘겨왔다. 2002년 7월과 2003년 2월에도 서버운영 중지 가처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소리바다는 법원 판결을 비웃듯, 소리바다2, 소리바다3으로 이어지는 변신을 통해 서비스를 지속해왔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소리바다3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해 소리바다운영자는 지난 9월 8일, 서울중앙지법에 이의신청을 제기하였으며, 아직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온갖 소송에도 불구하고 5년 이상을 버텨온 소리바다가 이번 고비도 넘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디지털 저작권을 둘러싼 국내외 상황은 소리바다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2005년을 전후하여 인터넷 상에서 저작권의 영향력이 실제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인터넷은 ‘전송권’ 홍역을 겪었다. 음반사 등 저작인접권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지난 해 통과되어 올 1월 발효되는 것에 즈음하여, 전송권에 의해 인터넷에서의 게시물 펌 행위나 배경음악 사용 등이 금지된다는 것을 알게 된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월간 <네트워커> 20호 참고) 그러나, 네티즌들의 엄청난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은 이미 통과된 후. 네티즌들은 눈물을 머금고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려둔 음악 파일들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문화관광부는 권리자들과 함께 ‘저작권 보호센터’를 설립하여 단속 강화의 의지를 표명했다. 온라인신문협회에서는 허락없이 신문 기사를 퍼가는 것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저작권릴레이카툰’이 연재되고 있다. 음반사뿐만 아니라 정부가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며 분위기를 잡고 있는 상황인데, 대량 불법복제의 온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P2P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소리바다에 대한 법원의 결정도 이례적으로 강력한 조치라는 의견이 많다. 애초에 음제협의 가처분신청 내용이 ‘음제협이 관리하는 6만 7천여 곡의 공유 금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아예 소리바다3 프로그램 자체의 배포와 서비스의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음제협 등 권리자 단체들의 행보도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음제협은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의 서비스가 계속되자, 지난 9월 12일 소리바다에 대해 간접강제를 신청하였다. ‘간접강제’는 채무자가 스스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법원이 간접적으로 채무를 강제이행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간접강제가 받아들여지면 소리바다는 음제협 소속 음반으로부터 얻은 영업상 이득과 음제협이 입게 될 손해의 정도, 가처분에 이르게 된 경위, 가처분 이후의 경과, 간접강제의 필요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간접강제금을 부과받게 된다. 한편, 지난 9월 8일에는 서울중앙지검이 (주)소리바다와 양정환 대표를 각각 저작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소리바다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음제협 등 권리자 단체들은 조만간 소리바다뿐만 아니라 파일구리 등 다른 P2P 업체들과 이동통신사 등에도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P2P 서비스 잇따른 폐쇄 위기

해외의 P2P 파일 공유 서비스도 위기에 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P2P 서비스인 윈MX(WinMX.com)가 최근 사이트를 폐쇄한데 이어, e-동키(eDonkey.com)마저 P2P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P2P 서비스의 연쇄적인 폐쇄는 지난 6월 미국 대법원이 그록스터(Grokster)에 내린 판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6월 28일, 미국 대법원은 그록스터 등 피고의 프로그램이 저작권 침해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기여 책임을 진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그 이전 하급심의 판결을 뒤엎는 것으로, P2P 파일 공유 서비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호주 법원이 또 다른 인기 P2P 서비스인 카자(KaZaa)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 호주법원은 카자로 하여금 서비스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저작권이 있는 파일들을 차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카자 보유업체인 샤만 네트웍스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일련의 저작권 위반 소송이 과연 P2P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여기서 얘기하는 P2P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소리바다와 같은 P2P 기술을 이용한 파일 공유 서비스를 의미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다양한 P2P 서비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P2P 서비스가 중단되어도 이용자들은 다른 P2P 서비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소리바다 외에도 돈키호테, 파일구리, 구루구루, 프루나, 미디어뱀프 등 다양한 P2P 파일 공유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국내 P2P 사이트들이 폐쇄된다고 해도, e-동키, 카자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모든 P2P 서비스를 막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기술적으로 혹은 서비스 모델의 측면에서 다양한 P2P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예컨데 대부분의 네티즌이 이용하고 있는 메신저 역시 P2P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했을 때, 과연 메신저의 이용까지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P2P에 대한 사망선고 가능할까?

권리자 단체에서 이용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P2P 사이트에 대한 소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9월 12일, 음악산업협회는 소리바다, 파일구리 등 P2P를 통해 파일을 공유한 네티즌 1985명을 사이버수사대에 고발했다. 9월 8일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상습적인 파일구리 이용자 150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블로그 이용자들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되는 등 개별 네티즌에 대한 고소·고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외신에 의하면, 지난 8월 31일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는 P2P를 통해 음악 파일을 교환한 이용자 754명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제소하였다. 미국 음반산업협회가 지난 2003년 9월 이래 제소한 이용자는 1만 4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 영화산업협회(MPAA) 역시 P2P를 통해 영화 파일을 교환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예측대로 P2P 파일 공유 서비스가 사라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권리자 단체들의 법적 공격이 아무런 효과도 갖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 6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윈MX나 e-동키 등에 영향을 준 것처럼, 하나의 P2P 서비스에 대한 법적 판결은 다른 P2P 서비스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소송의 위험 부담을 지기 싫어하는 P2P 업체들은 스스로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혹은 권리자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로 변화할 것이다. 음반사 등 권리자 단체에서 P2P 서비스의 설계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P2P 기술은 음반사의 적이 아니라 유용한 배포망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국내 P2P 서비스가 폐쇄되었을 때 아직은 해외의 P2P 서비스로 이동할 수 있지만, 이것도 무조건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 일본, 한국, 호주 등 인터넷 선진국에서 P2P 서비스의 저작권 침해 판결이 나오고 있으며, 한 나라의 판결은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적재산권 체제의 전 세계적 협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누텔라(www.gnutella.com)와 같은 ‘오픈 소스’ 혹은 ‘자유 소프트웨어’인 P2P 프로그램은 저작권의 통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유명한 대부분의 P2P 서비스 역시 상업적인 기업에 의해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저작권 단체나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P2P 프로그램이라면, 그리고 중앙의 서버나 사무실도 없이 그냥 개인들에게 배포되는 프로그램이라면, 법적인 공격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일반 이용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의 거센 공세를 저지하고, P2P 파일 공유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P2P 란?
전통적인 컴퓨터 통신은 정보를 서비스하는 서버와 정보를 요청하고 받는 클라이언트 컴퓨터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P2P(Peer to Peer)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들이 서로 대등하게 직접 연결되어 데이터를 교환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고정된 서버가 없이 그때 그때 서로 서버/클라이언트 역할을 하면서 상호 통신을 하는 것이다. P2P 기술은 소리바다, 그록스터 등과 같은 파일 공유 프로그램에서 뿐만 아니라, 분산자원 컴퓨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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