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표지이야기
미국 ‘그록스터’ 판결의 의미
국내 소리바다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의견 분분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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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록스터 홈페이지 http://groker.com

지난 6월 28일, 유명 P2P 서비스의 하나인 그록스터(Grokster)와 스트림캐스트(Streamcast)에 대해 내려진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리바다를 둘러싼 소송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사 사건에 대한 미국에서의 판결이 국내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 P2P 프로그램 그록스터에 기여책임 인정

미국 대법원은 그록스터 등 피고의 프로그램이 저작권 침해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기여 책임을 진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법률적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었다. 이 소송의 하급심에서는 그록스터/스트림캐스트에 대해 기여 및 대위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었는데,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이 냅스터에 대해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반면에, 이 소송의 하급심에서 책임을 부정한 이유는 프로그램의 구조와 관계가 있다. 즉, 중앙 서버에서 교환되는 음악 파일 목록을 관리했던 냅스터와 달리, 그록스터와 스트림캐스트의 모피어스(Morpheous)는 중앙 서버가 없이 이용자의 컴퓨터를 수퍼노드(supernode)로 활용하는 절충형 P2P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중앙 서버가 없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어떠한 파일을 주고받는지 파악하기 힘들고, 따라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이용되는 것이 1984년 소니의 비디오레코더(VCR) 사건이다. 처음 비디오레코더가 개발되었을 당시에도 권리자들은 이 레코더가 (방송)저작물의 불법 복제에 이용될 것을 우려하였으며, 이에 소니를 상대로 저작권 위반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 법원은 ‘비디오레코더가 상당부분 비침해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소니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 기여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였다. 비유하자면 ‘칼’이 인명 살상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긍정적인 용도로 상당부분 활용될 수 있다면 칼 제조자에게 살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를 유인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법원은 그록스터 사건을 소니 사건과는 다르게 보았다. 소니 사건에서는 소니사가 ‘저작권 침해를 유인하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저작권 침해를 유인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으며 이 경우에는 기여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피고들이 기존 냅스터의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수행한 점, 저작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필터링 등의 기능을 개발하지 않은 점,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였던 점 등이 그 근거로 지적되었다.

그록스터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그록스터나 모피어스 뿐만 아니라, 다른 P2P 서비스에 대해서도 커다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판결이 P2P 기반 기술의 발전을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법원은 기술이 아니라 ‘불법적 의도’를 판결의 근거로 삼은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불법적 의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법원이 몇 가지 사례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그것과 다른 경우에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P2P 개발자나 사업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업이 저작권 위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는 기술 혁신에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소리바다 판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그록스터 판결이 국내 소리바다 판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법률 전문가들은 그록스터 사건을 소리바다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기술적 구조 측면에서 보자면, 소리바다는 중앙 서버에서 이용자 목록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그록스터와 다르며, 여타 사실 관계와 적용 법리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록스터와 소리바다가 유사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정하게 국내의 담론 형성이나 소송 과정에의 영향을 배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 소리바다에 대한 민·형사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월간 <네트워커> 20호, ‘사이버로’ 참고) 형사법원은 소리바다의 복제·배포권 침해에 대한 방조 책임을 부정한 반면, 민사법원은 소리바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여 서로 상반된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현재 두 사건 모두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이 판결들은 모두 소리바다1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소리바다3에 대한 것은 아니다.

이용자는 불법인가?

하지만 소리바다, 그록스터 판결 등 국내외 대부분의 판결에서 이용자의 파일 교환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임이 공통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지난 1월 소리바다 판결에서도 민·형사 공히 이용자들의 복제권·전송권 침해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그록스터 사건, 호주의 카자 사건 등 해외 P2P 관련 소송에서도 대부분 이용자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캐나다 법원은 P2P에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것이 ‘사적 복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여, 이를 공정한 이용으로 볼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올해 초 전송권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의 인터넷 문화를 급격하게 바꿔놓았다. 인터넷에서의 저작물의 복제, 이용 등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저작권법이 실제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2P를 둘러싼 판결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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