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Cyber
이름과 얼굴에 재산권을 붙여라?
퍼블리시티권을 둘러싼 논란

양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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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는 부산에 거점을 둔 조직폭력배 칠성파의 이야기를 다뤘다가 대박을 냈지만 그 제작진들은 곤욕을 겪기도 했다. 감독의 친구이며 당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칠성파 부두목과의 사이에 흥행수입을 둘러싼 분쟁을 겪고 그 재판이 아직도 계속 중이다. 칠성파 부두목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만큼 흥행수입의 일정 부분을 나눠달라고 감독을 협박하여 제작사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는 내용이 마치 기정사실인양 보도되기도 했는데, 복잡한 사실관계 탓에 아직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이 코너에서 갑자기 영화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칠성파의 요구가 최근 논의되는 퍼블리시티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이란 성명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말한다. 실제하는 인물의 모습이나 성명에 관한 권리는 전통적으로 비경제적인 초상권의 보호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실제 인물의 경제적 가치, 즉 상품선전력 내지는 고객흡인력 등에 착안하게 되면서 저명한 인물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상업적 가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미국 판례법에서 인정되고 있는 개념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어 그 인정 여부에 관해 논란이 있다.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의 결정적인 차이는 뭐니뭐니해도 ‘머니(金)’이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다면 초상을 침해당한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범위가 달라진다. 초상권은 인격권의 한 내용에 불과해서 손해배상은 위자료 청구에 국한된다. 그 초상이 인격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결과 얼마나 큰 정신적 손해를 받았는가가 손해액 산정의 근거가 된다. 반면 퍼블리시티권은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인 만큼 그러한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는 그 침해행위로 이득한 액수가 손해액으로 인정될 수 있게 된다.

퍼블리시티권의 법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벌어들이는 상금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그가 나이키 골프 의류에 ‘우즈’라는 이름을 빌려주고 벌어들이는 수익에는 비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곤 한다.

최근 한류열풍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초상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소송도 국내에서 있었다.

전형적인 사례는 속옷 브랜드인 ‘제임스 딘’ 사건이다. 유명한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죽어서도 그 유명세 탓에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그의 유일한 상속인인 아버지는 1988년 제임스 딘의 고모와 고종 사촌에게 제임스 딘의 초상 및 성명, 퍼블리시티권을 양도하였고, 현재는 이러한 재산을 기본재산으로 하는 ‘제임스딘재단’이 설립되어 그 재단이 제임스 딘에 관한 퍼블리시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제임스 딘’에 대한 상표권은 개그맨 주병진씨에게 있다. 즉, 주병진씨가 특허청에 지정등록한 의류, 화장품, 신발 등에 대해서는 ‘제임스 딘’이라는 표장을 넣어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그에게만 있다는 뜻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의 허락없이 의류나 화장품에 제임스 딘이라는 표장을 넣어 상표로 사용했다가는 상표권 침해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제임스딘재단은 주병진씨가 설립한 주식회사 좋은 사람들과 주식회사 신안 어패럴을 상대로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를 주장하면서 더 이상 제임스 딘을 속옷 등의 상표로 사용하지 말 것을 청구했다. 결론은 피고 승소. 서울고등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권리는 법률에 규정이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제3자에 대하여 어떤 이익의 침해를 이유로 그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는 법률에 근거가 없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이것을 물권법정주의라고 한다). 불문법 국가인 미국이 판례로 인정한다고 하여 성문법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률적 근거 없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이 판결 이후에 법제화에 대한 주장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지난 6월달 박찬숙 의원(한나라당·문화관광위) 주최로 퍼블리시티권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박찬숙 의원은 "문화생산국, 문화선진국을 꿈꾸는 우리나라에서 퍼블리티권의 도입은 늦었지만 반드시 추진해야 할 문화정책"이라며 "비단 한류스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음반·자동차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도용당하고 있는 우리 산업의 보호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주장은 그리 설득력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화한다고 해도 한류스타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법원은 자국법에 따라 판결할 뿐이므로 자국법과 판례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제임스딘과 같은 외국유명인들에게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해 주어야할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손익계산서를 뽑아봐도 한류열풍에 애국심과 민족감정을 대강 버무려 외치는 법제화 주장이 장사가 될 일인지는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퍼블리시티권이 법률로서 규정할 수 있을만큼 명확한 권리인가도 문제이다.

미국 판례법상 인정되고 있는 퍼블리시티권은 초상이나 성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인의 얼굴이나 외모, 특이한 행동거지를 사진이나 그림을 통하여 허락없이 묘사하거나 그와 비슷하게 모방하는 것도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즉, 함부로 유명인을 모방한 ‘개인기'를 선보였다간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도 있고 배칠수씨는 배철수씨의 맘먹기에 따라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우디 알렌이 원고가 된 유명한 사건이 있다. 비디오 테이프 대여체인점을 영업으로 하는 피고가 자신들의 고객카드를 선전하기 위하여 우디 알렌과 매우 닮은 사람을 광고에 등장시켜 알렌의 독특한 몸짓을 하게 하였는데, 법원은 이것이 알렌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였다고 판시했다.

어떤 배우가 특정한 역할이나 배역을 단골로 함으로써 그 배역하면 곧 그 배우를 연상하여 인식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면 그 배역이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이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비록 기각되기는 했지만 일련의 드라큘라 시리즈 영화에서 드라큘라백작의 역할을 맡은 바 있는 배우의 드라큘라연기를 모방한 것이 그 배우의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아닌가 문제된 예가 있었다.

퍼블리시티권을 개념상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범위는 이렇듯 광범위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이론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이다. 더구나 민사상 불법행위로 규율해야 할 사항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입법하려는 것은 법체계를 무시하고 손 쉬운 길을 찾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누군가의 초상을 이유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는 그 돈을 나누어 가질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나 한 사람에게 독점적 권리를 인정해도 좋은가,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법제화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길을 걷다보면 반드시 공로(公路)로만 걷는 것이 아니다. 길로 사용되고 있어서 공로로 착각하지만 사유지인 경우도 있고 꼭 도로가 아니더라도 남의 마당이나 주차장을 지나다닐 때도 많다. 그 때마다 남의 땅이라고 해서 돌아가야 한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할 것인가. 다행히 우리 형법은 자기 땅이라고 해도 길로 사용하던 곳을 막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산권이 아무리 중요한 권리라고 해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인해야 할 부담의 범위라는 것이 있음을 그 형법규정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친구’의 흥행이 ‘친구’의 실화에 힘입었다면 공평의 원칙상 흥행수입을 좀 나눠줄 수도 있겠으나, 이런 문제는 법이 아닌 친구간의 우정 정도로 해결할 수도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나는 지금의 계속된 재판을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주의자가 될 뿐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소망을 간직한 보통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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