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미디어의난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의 일방적 지원 중단을 바라보며
퍼블릭 액세스를 위한 종합적인 지원제도 마련해야

박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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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는 기존 방송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가 이 시대소통의 핵심 통로인 방송미디어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셈이다. 표현의 자유가 기본적인 인권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7, 80년대부터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들이 가시화되었고, 그러한 투쟁의 구체적인 결실로 퍼블릭 액세스가 제도화되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 방송법 69조, 70조에 ‘시청자참여(제작)프로그램’ 조항이 신설되면서 퍼블릭 액세스제도가 도입되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출발이지만, 방송법에서 액세스 권리가 보장된 후 지난 5년 동안 지상파, 케이블, 위성 방송에서 다양한 액세스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 퍼블릭 액세스가 다른 나라 얘기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방송접근권을 보장하는 퍼블릭 액세스의 경우, 제도가 보장하는 이상과 현실의 접근성이 큰 차이가 있다. 즉, 인종, 계급, 언어, 정체성 등 다른 많은 이유들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접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배경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지원 제도가 필수적이다.

현재 방송법은 방송발전기금의 용도에서 ‘시청자참여(제작)프로그램’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매년 KBS <열린채널>에 대한 제작비 지원과 지역지상파방송 및 케이블 TV에서 방송되는 액세스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채택료가 지원되어 왔다. 그런데 지난 8월 초, 담당기관인 방송위원회는 예산이 조기 소진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방송채택료 지급을 중단하였다. 일방적인 결정이고 통보였다. 지원 중단이 시민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방송위의 일방적 판단을 통해 결정되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고시되는 시점도 지원금 중단 이틀 전이었다. 지원금 중단의 파장은 이제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강릉 지역의 케이블 TV인 영동방송에서 지역의 이슈들을 시민들이 직접 제작해서 방송하였던 <우리들 TV>라는 정규액세스 프로그램이 폐지되었고, 부안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액세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지원하려던 계획을 모두 그만두어야했다. 정부기관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정책 결정은 미디어활동가들과 시민 제작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지역의 액세스운동을 후퇴시키고 있다.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액세스권이 보장될 수 있는 지원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퍼블릭 액세스 지원제도는 무엇일까? 우리보다 앞서서 퍼블릭 액세스를 실현시켜 왔던 다른 나라에서는 퍼블릭 액세스의 근본 취지인 사회적 약자들의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들을 발전시켜왔다. 퍼블릭 액세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영화위원회(NFB)의 ‘변화를 위한 도전’ 프로젝트는 캐나다의 퍼블릭 액세스가 정착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1966년부터 1975년까지, 10년에 걸친 공공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캐나다 전역의 빈곤지역 공동체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조직화하고, 빈곤 문제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상과 미디어를 활용하는 공적 지원 프로젝트였다. 그 공적 지원의 내용은 기술지원 및 인력 지원,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지원까지를 아우른다.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이벤트 사업들에 대한 지원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적지원제도와는 그 철학과 지원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퍼블릭 액세스가 지역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고, 사회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구조로 정착하기 위해서 공적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뉴욕의 퍼블릭 액세스 방송국인 맨하탄 네이버후드네크워크(MNN)의 기금제도에 있다. 이 네트워크는 공동체 미디어기금(Community Media Grant)을 통해서 비영리 단체와 민중조직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각 단체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공동체커뮤니케이션을 쉽게 할 수 있는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공익적 관점에서 공동체의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공동체의 미디어 인프라를 확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기금의 핵심 목표는 공동체의 주체적 역량을 키우는데 있다. 맨하탄 네이버후드네트워크는 어떤 단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비디오전문가들을 고용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다. 오히려 기금을 지원받은 조직이 ‘그들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speak for themselves)’ 단체 내적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금은 맨하탄에 있는 다양한 비영리 조직들을 위해 쓰여진다. 1992년부터 거의 3백만 달러가 70여개의 맨하탄 공동체조직들에게 지원되었다. 또한 이 네트워크는 기금을 통해 맨하탄의 문화적, 사회적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 노동자, 이주민, 에이즈 환자, 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공동체 미디어 기금을 지원받아 진행되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적 조건들에 대응해 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접근과 참여를 보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들을 펼쳐 왔으며, 퍼블릭 액세스 지원제도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발전되어 온 것이다.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나면 분당 몇 만원으로 산정해서 채택료를 지급하는 현재의 액세스 지원제도로는 우리사회에서, 주류 방송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참여와 접근을 보장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 현실에 적합한 액세스 구조를 실험할 수 없다. 촬영, 편집 장비 등 인프라조차 갖추어져 있지 못한 지역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지원체계와 함께, 공동체 현안과 사회적소수자들을 위한 제작지원에 이르기까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퍼블릭 액세스는 기존 방송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접근과 참여의 권리는 퍼블릭 액세스와 관련된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할 때에도 역시 적용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할지라도 시민사회와 현장 활동가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퍼블릭 액세스 정책은 현실에 적용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이번 지원중단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다. 퍼블릭 액세스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 시민사회와 지역 미디어 활동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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