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사람들@넷
이 방송은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내는 방송입니다!
언니들의 맞춤 방송, L양장점

임정애  
조회수: 3726 / 추천: 70


사람의 목소리는 저마다에 맞는 시간대가 있단다. 저음으로 바닥에 쫙 깔리는 목소리는 새벽시간에, 하이톤에 방방 뜨는 자극적인 목소리는 정오나 아침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최초의 공중파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L양장점(http://cafe.daum.net/lezpa)’은 매주 수요일저녁 12시부터 1시까지 100.7MHz, 마포FM(http://mapofm.net/blog/index.php)을 통해 지상파로 방송된다.

대략 짐작 하셨겠지만, 언니들의 맞춤 방송 ‘L양장점’은 일상의 어느 한 시간, 아주 낮고 조용하게 마포지역으로 퍼져간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L은 레즈비언(Lezbian)의 ‘L’, 바로 그것이다.

레주파(lezpa)는 L이라는 이름으로 살기로 작심한 언니들이 두 달간 모여 여성이반 미디어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주파수 L을 잡아라’는 미디액트,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여성영상집단 움, 시민방송이 모여 기획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주파수 L’의 열성적이던 선생님은 팀원 모두가 실제 방송에 직접 뛰어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언니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언니들은 기획에서부터 원고작성, DJ, 편집에 이르기까지 1인 제작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되었다. 기존 미디어로부터 소외되었던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찾고, 언니들을 위한 신나는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제작팀, 레주파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다 1킬로 와트짜리 소출력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 마포FM 개국이야기가 들렸다. 레주파는 급하게 제안서를 만들고 마포FM과 미팅을 가졌다. 그래서 수요일 밤 12시부터 1시라는 시간을 편성받고 지난 8월 10일 첫 시범방송을 시작했다. 첫 방송 후, 인터넷에 까페를 만들고 사연과 신청곡을 받았다. 인터넷에 까페가 만들어진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회원수가 400명을 넘어서고 있는 걸 보면 그동안 언니들의 목마름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제 똑똑, 노크를 하고 ‘L양장점’으로 들어가보자. 양장점에서 언니들은 치수를 재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또 언니들은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 언니들을 찾기(숨은 그녀찾기)도 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이야기(나홀로 레즈비언)도 나눈다.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알아야 할 것(Dr. Right)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언니들의 은밀한 섹스이야기(여자끼리 떠나는 홍콩여행)도 나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알 순 없지만 언니들은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존재가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혹자는 묻는다. “방송내용이 너무 부드러운 것 아니냐”, “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으로 나아가야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방송 디제이(DJ)인 드자이너 청명의 생각은 다르다. 운동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레즈비언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지역방송이긴 하지만 공중파 방송을 따냈다는 것, 그리고 55분이라는 시간동안 언니들의 목소리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드자이너 청명은 이렇게 낮고 부드럽게 세상속으로 들어가려한다. 그래서 레즈비언이 뿔이 달린 이상한 여자들이 아닌 그냥 내 옆자리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걷고 있는 그냥 내 친구일 수 있다는 것. 이런 작은 변화들로부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을 배려하는 것, 그것이 레주파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의미가 아닐까.

마포FM은 지난 8월 시범방송을 시작으로 9월 26일 정식 개국했다. 이제까지의 시범방송으로 청취가능 지역을 가늠하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아직 마포FM과 ‘L양장점’은 실험중이다. 이제부터 더 많은 청취자와 만나야 하고 더 많은 실험들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레주파는 조금씩 내공을 쌓아갈 것이다.

마포지역에 살지 않아 ‘L양장점’을 듣지 못한다고 절망하셨을 언니들을 위한 광고 하나. 마포FM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청취(http://www.pin.co.kr:8000/listen.pls)가 가능하며 아날로그 라디오보다는 MP3, 차량용 라디오 등 디지털라디오에서 주파수가 더 잘 잡힌다. 마포이외 지역에서는 음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터넷으로 들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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