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영화
당신의 사랑과 그들의 사랑에 차이는 무엇입니까?
동백꽃(2004)

이지연  
조회수: 5721 / 추천: 52


유명한 연예인이 커밍아웃을 하고 <헤드윅>이라는 퀴어영화가 인기를 얻어 컬트현상을 일으켜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들은 음지에 머물러 있다. 올해로 6회를 맞았던 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여전히 가면 속에 얼굴을 묻어야 하고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TV 드라마와 영화 안에서 퀴어 캐릭터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대중이 인식하는 그들은 극을 위한 감초의 역할을 행하는 이들이며 쉽게 동화되기 힘든 주인공이다. 몇 해 개최되지도 못하고 사라진 퀴어영화제 이후 타인이 아닌 그들의 목소리로 연출된 퀴어영화를 만나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동백꽃>이라는 영화를 만나게 된다.

애초 제목이 <동백꽃 프로젝트 : 보길도에서 일어난 세가지 퀴어 이야기>인 영화 <동백꽃>은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이다. 이성애자인 최진성 감독과 커밍아웃을 한 소준문, 이송희일 감독이 각각 <김추자>, <떠다니는 섬>, <동백아가씨>라는 에피소드로 동백꽃이 만발한 보길도라는 섬을 통해 우리사회 속의 또 하나의 섬인 퀴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최진성 감독의 <김추자>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만난 왕근과 춘하는 그들의 사랑현장을 교회 목사에게 들키고 이별하게 된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우연히 TV에서 이종격투기 선수가 된 왕근을 발견하게 된 춘하, 그들은 보길도로 여행을 떠난다. 단둘의 여행이 아닌 왕근의 어린딸 ‘추자’가 동반된 여행이다. 이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하이브리드한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 최진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김추자 노래를 불러들이고 드랙퀸을 선보이며 재기발랄한 퀴어 멜로를 완성시킨다. 그가 전 영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딱딱한 무게의식은 던져버리고 억지로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진지함을 보이지 않는 솔직하고 경쾌한 에피소드이다.

<김추자> 에피소드가 <동백꽃> 영화에 들어가는데 있어 흥겨운 입문서라면 다음에 보여 지는 소준문 감독의 <떠다니는 섬>은 퀴어로서의 불안한 정서를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자신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피해 보길도로 들어온 진욱과 연후는 2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감정이 무뎌지고 변해간다. 그들만의 안식처로 생각되던 섬에 한 남자는 남겨지고 한 남자는 떠난다. 소준문감독의 첫 연출작인 <떠다니는 섬>은 <김추자>에서 보여주지 않은 내면으로 한발 더 들어간 영화이며 사랑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미 여러 편의 퀴어 영화를 연출한 바 있고 이 프로젝트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이송희일 감독의 <동백아가씨>이다.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옛 애인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그의 옛 애인인 현수를 찾아 보길도로 들어온다. 현수는 보길도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새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자는 현수와 애인의 일상을 지켜보다 절규하며 남편의 죽음을 알린다. <동백아가씨>는 퀴어영화이자 퀴어라는 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미 이송희일 감독은 <슈가힐>에서 사회가 용인해주지 않는 불온한 사랑이기에 여자를 방패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퀴어들을 보여준바 있으며 <굿 로맨스>를 통해 사회가 원조교제라 일축하는 아픈 사랑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성애자 시선으로 재단된 사회에서 소외받는 동성애자를 대변함과 동시에 그로인해 아픔을 겪는 이성애자와 선입견으로 점철된 사회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섬 보길도를 매개로 옴니버스로 제작된 <동백꽃>은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자극적인 퀴어영화를 넘어 그들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앞의 영화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재회하고 이별하고 해후하는 과정을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이성이건, 동성이건 그것은 감정에 있어 중요한 전제조건이 아니다.

물론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방법에 있어 <동백꽃>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적은 제작비와 촉박한 일정을 감안한다면 위축되지 않고 강행된 이 프로젝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한다. 영화 본연의 미학과 완성도를 떠나 퀴어 스스로의 목소리가 발현된 독립영화를 상업영화 극장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불안정한 상영일수로 관객들이 영화를 눈치채기도 전에 극장 간판에서 내려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이런 의미에서,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그리고 이 영화를 보러오는 소수의 관객을 위해서 독립영화전용관이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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