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북마크
지식노동자의 시대
피터 드러커의 『 Next Society 』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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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Next Society』에서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이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포드주의 산업에서 포스트포드주의 산업시대로 옮겨가면서 이제 더 이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자본’이나 ‘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과 토지, 그리고 노동은 더 이상 기본적인 생산수단이 아니며, 새로운 생산수단은 ‘지식’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부를 창조하는 중심적 활동은 이제 생산적인 곳에 자본을 배분하는 것도 노동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노하우, 제품설계, 마케팅 기법, 고객에 대한 이해, 개인의 창조성, 조직의 혁신성 등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지식자원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논의는 정보화 담론, 신경제론에서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얘기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이행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생산의 핵심요소의 변화와 같은 경제구조의 이행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항상 특정한 경제구조는 경제적 논리 또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그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형태의 노동주체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주의는 경제적인 방식으로만은 작동할 수 없고 반드시 특정 형태의 문화적 구속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공장의 노동자는 농사꾼과는 다르게 정확한 시간관념과 공장내부의 규칙과 규율에 익숙한 신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정보자본주의에 있어 요구되는 노동주체성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신지식인 담론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지식노동자’ 담론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드러커가 주장하는 지식노동자 담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지식노동자는 학교교육의 지식에서 그치지 않고 혁신 또는 평생학습의 과정 속에 있는 노동자이다. 둘째, 지식노동자에게는 지식과 정보의 단순반복이 아닌 창의성이 요구된다. 셋째, 지식노동자는 기업의 고용자가 아닌 파트너이므로 자율성을 갖고 노동해야 한다. 이와 같이 드러커가 제시하는 ‘지식노동자’의 개념은 새로운 직업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정보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주체성을 경영학적 담론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지식노동자’라는 개념을 80%를 먹여 살리는 20%의 전문가집단이나 직업군에 국한되는 개념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식노동자’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의 전체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지식정보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주체 모두에 해당되는 포괄적이며 보편적 노동주체성으로서의 개념이다. 왜냐하면 정보화과정이 노동방식에 도입됨에 따라 대부분의 노동은 컴퓨터가 정보를 매개하는 방식으로 변모하였고, 이것은 지식과 정보 그 자체는 특정한 계층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식정보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지식과 정보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러한 재화를 이해하고 가공할 수 있는 인적자본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노동자는 지식정보자본주의의 보편적인 노동자상으로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계속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공부하며 살아가는 평생학습 사회, 누구보다도 자율적이며, 창조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노동의 이상적인 모습은 자신의 혁신과 개발이라는 장밋빛 이상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자본주의가 바로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찬양하는 덕목들이다. 우리는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여가시간에는 앞으로 도입될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하며, 영어를 배우고, 운동을 통해 몸과 건강을 관리하고, 그런 생활을 행복한 척까지 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명의 노동자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기업과 회사가 새로운 기술적 트렌드를 따라 가야할 때 회사는 그들을 교육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면 지식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을 교육할 책임이 있으므로 모두가 알아서 신기술을 익혀야만 하고, 회사는 단지 그러한 인력풀을 활용하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가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마스터플랜으로서 우리가 지식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상 혁신, 창의성,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책임일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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