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만화뒤집기
조카의 머리 속에서 나를 찾아보기

신성식  
조회수: 3582 / 추천: 50


만 화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대중성이다. 그만큼 뭔가를 즐기는 일반에게 친숙하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 만화 한 번 안본 사람이 없을 테고 재미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게 얼마나 이어져 왔는가에 상관없이 이건 굉장한 장점이다. 굳이 대중을 만나기 위해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는 어떤가. 심지어 대중들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만화는 그런 점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만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한 행운이다.

하지만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 만화의 이러한 장점은 거꾸로 만화는 쉬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기에 충분했다. 보기에 쉬운 것에서 점점 커져 까짓 거 만들기도 쉽겠지, 그리기도 쉽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장르 자체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지게 하였다. 만화 자체는 재미나지만 그렇다고 영화나 문학처럼 또는 순수회화처럼 대단한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거다.

사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만화는 여전히 하위문화나 저급문화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팔딱팔딱 뛰는 재미, 속도감이 주는 재미, 성장이 주는 재미, 전문성이 주는 재미, 야한 재미 등이 아니면 만화 같지 않다고 느낀다. 세상도 골치 아픈데 만화까지 골치 아프면 안 된다. 왜냐면 만화는 쉬운 거니까.

여기 쉽지 않은 만화가 하나 있다. 인간 내면의 심오한 뭐시기를 끄집어내서가 아니다. 냉혹한 인간 사회의 폐부를 집어내서가 아니다.

그냥 그러니까... 지금은 몽땅 까먹어버린 그런 걸 그려내서이다. 잊혀진 것들. 잊고 싶어서 잊은 게 아니라 저절로 잊혀진 것들. 그래서 그런 게 원래 있었기는 했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다. 기억이건 물건이건 잊혀진 것들, 내 의식에서 사라진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게 기억이라면 무의식의 어느 한구석에 처박혀있을 수도 있고 물건이라면 다행히 버려지지만 않았다면 다른 물건을 찾다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고모가 잠잘 때 생길법한 일』(아래 고모가)은 그런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짜잔

이 책을 처음 보다보면 이게 정말 고모가 잠잘 때 생길법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누구나 겪은 어린 시절이지만 지나고 나면 아이였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처럼 조카의 행동(이야기)에 대해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어릴 적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어린 아이의 이야기, 조카의 이야기이다. 혈연이기는 하지만 책임성은 별로 없어도 되는 일정한 거리(여유)가 있는 존재, 조카! 부모가 아닌데 더 끈끈할 수도 있고 남남처럼 소원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조카의 눈을 통해서 갖가지 느낌들이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보니 조카의 입장에선 너무도 당연한 과정과 결과들이 독자들에겐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감상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들이 있다. 먼저 대상이 되는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경우 일단 그 지식으로 감상한다. 둘째, 뭔지 모르겠지만 보기는 괜찮은 것 같은데... 뭐 이런 정도는 무난한 반응이다. 여기까지는 별로 문제 될게 없다. 문제는 대체 저게 뭘까 하는 식의 반응이다. 대체로 추상화(난해할수록 더)를 볼 때 잘 나타나곤 한다. 느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냥 즐기면 되는데. 느끼면 된다는데...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헉! 난해하다. 이해가 잘 안된다. 이게 무슨 얘길까. 『고모가』를 첨 봤을 때 딱 이런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형식도 한몫한 것 같다. 가로 긴 판형. 한 쪽 당 4칸씩의 구조. 게다가 배경에서 원근이 없다. 이렇듯 『고모가』는 좀 낯설다. 낯설고 좀 어렵다. 이건 쉬운(?) 만화의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특히 이 만화를 보는 독자가 ‘아이의 상상력’이 단 한 움큼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면 더 그렇다. 그럼 보지말까? 하지만 조금만 더 여유를 갖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물엔 양면성이 있지 않은가!

차근차근 느끼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조카의 기발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특별한 아이의 특별한 기발함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의 평범한 기발함에 말이다. 당신도 나도 가졌었던 거. 그런 기발함으로 그의 세계가 펼쳐진다. 거미가 되어 사자가 된 고모를 만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잡기위해 고생도 하고 그림책 속으로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한쪽씩 넘기다 보면 아 왜 이 만화는 4칸씩 그렸을까, 또는 왜 배경을 이렇게 그렸을까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조카가 그린 만화가 나오는 장면이다. 작가가 일관되게 쓰고 있는 구도는 실은 아이들의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고모가』는 단순히 아이들의 상상, 놀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와서, 조카는 잠만 자야하는 -- 그래야 이 만화가 나오니까 -- 고모를 대신해서 직접 작업을 한다. 이제 작업을 다해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칸이 모자라서 이야기를 다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조카는 가벼운 좌절을 경험하거나 연구 과제로 남겨 놓거나 한다. 그게 다다. 사실 조카의 입장에서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렇게 좀 낯설지만 또 한편의 만화를 다 봤다면 그만큼, 색다른 경험이 쌓인 만큼 씩 당신이 가진 만화의 폭과 깊이가 커갈 것이고 딱 그만큼 한국 만화의 경계도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낯설어서, 어려워서 만화 같지 않은 만화가 아니라 그냥 좀 다른 만화가 될 것이다. 그냥 좀 다른 만화는 만화가 아니라는 평가를 듣기에는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너무 아깝고 그렇게 쉽지도 않다.

그나저나 조카는 만화작업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느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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