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표지이야기 [뜨거운 감자 아이템 현금거래]
아이템 현금 거래는 없다?!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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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현금 거래의 양성화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지난 몇 년 동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나 도덕적 가치관의 대립으로 논의가 공전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템 현금거래를 포함하여 게임 산업에 대한 보다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아이템 권리금 거래가 있다!

올바른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아이템에 대한 권리 및 아이템 현금 거래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이템 현금 거래’라는 용어 자체가 마치 아이템이 여타 물건과 같이 현금과 교환되는 듯한 혼동을 주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실제 물건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일부 게이머의 경우 자신의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결과인 만큼, 획득한 아이템에 대해 강한 소유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이템은 소유권의 대상인 유체물이 아니며 게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 관련 판결에서도 재물을 대상으로 한 ‘절도죄’가 아닌, 사기죄나 정보훼손죄를 적용하고 있다.
게임 업체는 약관을 통해 캐릭터, 아이템 등 게임 내 모든 정보에 대한 권한을 업체가 가지고 있음과 아이템에 대한 유상 매매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 상 게임 업체는 게임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용자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템을 비롯한 게임 서비스를 ‘이용할 권한’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임 업체는 서비스의 중지 및 장애에 대해서만 일정한 책임을 질뿐이다.

그럼 ‘아이템 현금 거래’는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부산지방법원 윤웅기 판사의 분석이 주목할만하다. ‘2004 미래게임포럼 공개세미나’에서 발표한 「MMORPG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에 대한 법정책적 고찰」 이라는 논문을 통해, 그는 “이른바 아이템 현금 거래는 없”으며, “아이템 권리금 거래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이템은 물건이 아니며, 게이머들은 아이템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템 자체가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새로운 입법을 통해 아이템에 대해 물건과 같은 소유권을 인정한다면 그 사회적 영향력은 엄청날 수 있다. 우선 게임 업체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며, 만일 회사의 잘못으로 아이템이 없어진다면 거래되는 시세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게임 구조의 설계를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머가 갖고 있는 아이템에 대한 ‘이용권’이 거래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논리로는 게임 업체가 개별 아이템에 대한 사용료를 받지 않거나 그 액수가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아이템은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또한, 아이템 이용권이라는 게이머의 재산상 이익을 인정하였을 때, 이에 대한 게임 업체의 책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아이템에 대한 권리금

윤웅기 판사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아이템에 대한 일종의 권리금’이라고 주장한다. 이용자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며, 이 즐거움은 상위 레벨로 올라갈수록 더욱 커진다. 어떤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는가가 레벨업을 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이지만, 게임 내에서 이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 아이템 현금 거래는 이와 같은 지루한 노동을 줄이고 쉽게 레벨업하기 위한 요구로부터 나온다. 게임 내에서 양도되는 것은 ‘아이템에 대한 이용권’이지만, 지불되는 돈은 ‘당해 아이템을 획득하기까지 양도인이 기울인 노력과 같은 무형적 이익의 대가인 권리금’이라는 것이 윤웅기 판사의 주장이다.

아이템 현금 거래를 금지하는 게임 약관은 불공정하다

이와 같은 윤웅기 판사의 논리는 아이템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게임 업체 약관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현금 거래의 객체가 “게임사의 저작물인 아이템 자체 혹은 아이템 이용권에 대하여 지불되는 대가라기보다는 그 아이템을 획득하는데 소요되는 게임 플레이를 가치있다고 여긴 게이머가 이를 달성한 게이머로부터 게임 내 설정에 따라 양도받는 데에 지불하는 일종의 권리금 성격의 돈이며, 거래 또한 게임사와 무관하게 게이머들 간의 사적 자치의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게임 업체가 이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마치 건물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인이 임차인 사이의 권리금 거래에 대해 개입하지 않듯이 임대인에 해당하는 게임 업체가 게이머 사이의 권리금 거래에 개입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템 현금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제시되어 온 사이버 범죄에 대해서도 그는 “현금 거래 금지 약관이 없다면 정상적 부분은 안정성을 띄게 되고, 이에 기생하여 사기, 공갈 등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고소, 처벌은 용이하게 되어 사이버 범죄에 대한 대응이 강화될 것”이라고 바라보았다. 현재는 게이머가 아이템 사기를 당해도 약관에 의해 오히려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하여 신고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임의 구조에 주목해야

아이템 현금 거래가 게임성 자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 업체는 아이템 현금 거래가 정상적인 게임 진행을 방해하고, 게임을 재미가 목적이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누군가 현금으로 쉽게 레벨업을 할 수 있다면 이용자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의 룰을 무너뜨리고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아이템 현금 거래는 게임의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게이머들 사이에 아이템 양도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고, 다른 게이머에게 이전되더라도 아이템의 가치가 유지되도록 설정한 것 등 게임의 설계 자체가 아이템에 대한 무상 혹은 유상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상 양도를 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는 상황에서 약관에서만 금지하고 있는 것은 게임 업체의 책임 회피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또한 게이머들이 게임의 일정한 부분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노동’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이템 현금 거래가 발생하는 것이라면, 자신들이 설계한 시나리오에 따라 게임을 즐겨야 한다는 게임 업체의 주장은 게이머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게임의 하나인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가 일정 아이템에 대해서는 다른 게이머의 계정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게임을 설계한 것을 보면, 업체가 게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게이머 사이의 관계와 문화 자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임 업체에게 특정한 설계를 정책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혹자는 아이템 현금 거래가 사이버 범죄와 게임 중독을 야기하기 때문에, 아예 아이템 현금 거래를 불가능하도록 게임 설계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규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아이템 현금 거래는 “(게이머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게임 구조에 대응하여 고렙과 저렙 플레이어가 협력적으로 찾아낸 조절작용으로도 파악될 수 있다”는 윤웅기 판사의 의견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물론 윤웅기 판사의 주장이 아이템 시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회색 시장의 규제 문제를 언급하며, “권리금의 형식으로 이를 환수한 게이머에 대하여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는 문제도 거론할 단계에 와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또한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아이템 권리금 시장에 청소년들의 접근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시장 규제 방식에 대한 고민 필요

그러나, 아이템 현금 거래에 대한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할 쟁점들이 남아있다. 우선 윤웅기 판사의 논의는 ‘MMORPG 아이템’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템베이 등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는 고스톱, 포커 등 게임의 사이버 머니도 거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김민규 팀장은 아이템 현금 거래 문제를 분석한 자신의 논문에서 “사이버머니의 현금 거래를 인정하게 되면 논리적으로 고스톱, 맞고, 포카류 등을 서비스하는 게임포탈, 사이트들은 일종의 도박장를 개설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현행법에 의해 도박장 개설은 불법이기 때문에 게임포탈, 사이트들은 모두 법적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양성화할 아이템의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고스톱 등 명시적인 도박 게임 뿐만 아니라, MMORPG 내에 도박성을 가지고 있는 내용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허용되는 아이템의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아이템 거래 시장을 이용하는 주 이용자가 청소년임을 감안할 때, 청소년의 시장 접근을 어떻게 제한할 것이며, 접근 제한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임 중독, 사이버 범죄 등 아이템 현금 거래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에 아이템 현금 거래가 실제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객관적인 근거가 제시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에 대한 진단이 달라지면 해결 방안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아이템 현금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구체적인 근거와 설득력있는 논리를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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