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사이버
차라리 몸치를 선택하기
사회적으로 강요된 성차, 몸을 소외시킨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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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대동제가 한창일 때 벤치에 앉아 멍하니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남자들이 대부분 넓은 신체 범위 안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예측할 수 없게 몸을 쓰는데 반해, 여자들은... 뭐랄까 신체를 가지런히 정렬해 놓고 마치 보이지 않은 버블 안에 갇혀있는 듯, 거의 그 밖으로 팔다리를 뻗는 일이 없었다. 가장 크게 대조적으로 내 눈에 들어온 두 인물은 웃통을 벗고 땀을 비오듯 쏟으며 농구하던 남학생과 나무그늘 밑에서 화장을 하고 정장에 핸드백까지 갖추고 하이힐 위에 올라서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여학생. 물론 개인 성향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그 후로도 이어진 나의 ‘동작 관찰하기’ 취미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개인의 성격이나 자아 이미지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움직임은 사회적인 성별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 남자들의 춤은 힘과 기능의 표현으로 읽혀지고, 여성들의 춤 동작은 섹시함, 곡선미 등을 살린 이성애 가부장 사회에서 욕망하는 어떤 정지 포즈들의 연결일 때가 많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성차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춤은 또 한번의 갈등의 장이 아닐 수 없다. 내 안의 검열 장치들이 작동되긴 하지만, 춤도 시대의 언어인지라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매뉴얼들은 이미 너무나 성별화되어 있다. 나만의 동작을 찾아내고 표현하는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서 어떤 동작이 그 사람 안에서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작이 주체가 되어 여러 개인들의 몸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라는 표현을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춤도 마찬가지의 측면이 있다.

출중한 여성 춤꾼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힙합씬을 접하고 나서 브레이킹 장르에는 배틀이라는 문화가 있다는 것에 놀랐던 기억도 있다. 비트가 강한 음악을 틀어놓고 양팀이 마주서서 한명씩 선수를 내보내는 것인데, 정황으로 보아 실력에서 밀렸다고 생각이 되면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 선수를 내보내는 식. 좀더 위험하고, 좀더 드물고, 좀더 파워풀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브레이킹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에게 최고의 칭호는 그래서 ‘괴물(Monster)’이다. 춤은 공유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때, 남성들은 춤마저도 철저하게 경쟁하고, 서열을 매기고, 밟고 올라가서 최고가 되어야하는 ‘성취에의 강박의 서사’로 만들어간다는 것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힙합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나서는 아예 ‘걸스힙합’이라는 장르를 새로 떼어서 팔 선과 골반 등을 돋보이게 하여 섹스어필하고 여성적인 춤 안에 여성 춤꾼들의 자리를 따로 마련하였다. 텔레비전에서 접하게 되는 여자 댄스 가수들의 춤까지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가끔 미취학 아동들까지 대동하여 가수들의 춤을 모방하여 섹스어필한 춤동작을 따라하게 하고, 그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에 마음 한톨도 동조할 수 없는 스스로가 지독히도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여성들은 춤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스로의 몸을 성애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받는다. 나와 함께 하루하루의 고된 생로병사를 함께하는 팔과 다리, 생식기 등등을 스스로도 성애적으로 느끼거나, 그렇게 연출하도록 하는 것은 이 사회가 몸을 소외시키는 큰 축이기도 하다.

춤과 관련하여 다른 방식으로 몸을 소외시키는 경우도 있다. 자칭 ‘몸치’들 중에는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고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맞춰 스스로의 몸을 전시하는 것은 너무도 주체적이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셀프이미지는 성격, 능력, 성향 등등의 추상적이고 가치로운 것들로 구성되어있어서, 물질적이고 날것인 춤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들도 보아왔다. 이렇게 성별화되고 스테레오 타입화된 사회적인 춤동작들을 도저히 자기 것으로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몸치라고 정리해버리고 춤 없이 살기로 정한다.

춤은 몸의 언어이고, 동작을 재료로 하는데, 그 자모음의 재료와 단어, 그리고 문장들이 모두 그 사회의 몸의 언어를 공유하는 언중들에 의해 이미 대부분 규정되어 있다. 여성의 몸은 위협적이거나 크게 확장하거나 좌중을 압도하거나 주체적인 성욕을 자랑하거나 기괴한 움직임으로 좌중을 놀라게 할 일이 별로 없다. 너무나 한정된 어휘를 자랑하는 몸의 어휘 속에서 언어화되지 못한 여성들의 욕구들과 심상들은 아마도 몸 어딘가에 말의 무덤이 되어있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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