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블로거TO블로거
참 맑고 깨끗한 사람
풀소리의 작은 목소리(http://blog.jinbo.net/j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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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전쟁터이다. 총부리를 서로 겨누지 않아도 도처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호환과 마마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날마다 쫓겨나고 두들겨맞고 급기야 죽임을 당한다. 사는 것이 공포가 된 세상에서 마음에 병이 깊은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비규환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일까,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요즘 세상은 목소리 크면 장땡이다. 교통사고 가해자, 공해물질 배출업자, 한통속이 되어 뇌물을 주고 받은 재벌과 정치인, 모두 당당하게 큰소리친다.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나만 그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노동운동판도 이 세상의 축소판이 되어버렸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고, 한줌도 안되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 전쟁을 치르면서 시나브로 우리 안에도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이 생겼다. 현장을 들먹이고 대중을 얘기하지만 정작 그 현장 대중들 가까이에 가서 묵묵히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다. 건강한 정파운동 대신에 깡패집단과 같은 패거리문화가 판을 친다고 사뭇 걱정들은 하면서, 정작 함께 일을 도모하자고 하면 의심의 눈길부터 보내기 일쑤이다. 삿대질과 고성은 길거리에서나 운동권의 회의장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 참 살기에 팍팍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낮은 목소리로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다. 풀소리는 그런 사람이다. 딱 한 번, 그것도 겨우 20분 남짓, 공식회의에서 그의 해맑은 얼굴을 마주했을 뿐, 블로그를 통해서 그와 만나고 교류했지만, 그것으로도 그를 알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가 작고 사소한 것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며, 그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진실되고 일관된 것인지를 안다. ‘세상의 무게가 어디에 있는가 / 성심을 다 한다면 / 작다고 어찌 소중하지 않으랴.’ 풀소리가 오래 전에 이웃들에게 보낸 연하장에 인용한 강행원 화백의 글이 곧 그의 마음이다.

언젠가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상층 간부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모호하게 포장하는 데 익숙해졌다. 심지어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그렇다.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총파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도무지 아리송한 표현들이 넘친다. 그건 잘못되었다고, 나는 늘 주장한다. 대중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책임있는 간부라면 주요한 현안에 대하여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중이 알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그 산하 조직에서라면,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입장, 올해 초의 잇따른 대의원대회 파행, 강승규 사건의 해법,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의 문제 등등 간단치 않은 사안들에 대해 일관된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조직의 구성원들이 인간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다.

풀소리는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말한다. 민주버스노조의 상근간부로, 민주노동당의 열심당원(중앙위원)으로, 또한 학교운영위원으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풀소리가 세상에 내는 작은 목소리’들을 보라. 민주노총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여 허전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담배 연기에 실어 보내고, 민주노동당 게시판의 소모적 논쟁을 지켜보면서 현재의 질곡을 넘어서는 고뇌와 진정성을 촉구하고, 학교에서의 체벌에 대한 현실적 선택을 제안하고 받아들인다. 그의 고민과 생각들을 따라가다가 보면, 내 입장과 같아서 반갑다거나 달라서 불편하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공감하며 타자를 존중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한국사회에서 남자란 그 자체로 권력이다. 아무리 민주적인 가장으로 행세한다고 하더라도 아내가 보는 남편이란 그저 똑같은 대한민국 남자일 뿐이다. 풀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아내의 불만의 정체를 정확히 모르고,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 돈 별로 못 벌어오는 것, 아니면 어머니 팔순잔치 초청장에 아내의 이름을 빼놓은 것을 열거하는 대목에서 나는 킥킥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풀소리의 아내가 곧장 호통을 쳤다. “당신의 나이에 비해 사고나 행동이 안 막혀 있고 자유롭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자의 자세에서 나온 걸로 보여. 난 수레를 같이 끄는 사람이 필요한 거지 어쩌다 도와주는 마음 좋은 이웃이 필요한 게 아냐.” 푸하하하, 풀소리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도 나와 같이 어쩔 수 없는 남자라니까.

가끔 나는 풀소리의 말에서 신영복의 사색이나 도종환의 시정을 느끼곤 한다. 애정의 최고 단계는 강요하는 것이며,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뜬금없는 얘기냐고 궁금한 사람은 그의 「애정(affection)」론을 읽어보라. 불감증 환자가 되어버린 듯한 자신에 대한 성찰이 눈물로 배어나오는 「잘 못 사는 것 같다」도 읽어보라. 민주노총호에서 내리고 싶은 동지들 앞에서, 총연맹 지도부는 사퇴해야 하지만, 「민주노총이 망한다면 민주노총과 함께 침몰할거야」 하고 말하는 그의 마음을 함께 호흡해 보라. 내가 더 말할 게 없다. 그는 참 맑고 깨끗하다. 그런 동지를 알게 되어서 고맙고, 인연을 맺어 준 진보넷 블로그가 또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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