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영화
야스쿠니신사를 아는가?
한일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

이지선  
조회수: 3297 / 추천: 52
얼마전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감행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언론과 정치권은 한일관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고이즈미는 신사참배 행위가 무슨 문제가 되는지‘도저히’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게,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무슨 문제인가? 총리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일본의 국민으로서 신사에 참배를 드리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평안을 빌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다. 그렇다면 또 짚고 넘어가야 한다. 도대체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그 신사에 가서 참배를 드린다고 하면 각종 언론에서는 호떡집에 불난 듯 떠들어 대고 한일관계가 얼어붙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인가. 알길이 없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는 인터넷이라도 뒤지는 부지런함을 보이겠지만 야스쿠니 신사의 태생부터 시작하는 수많은 텍스트들은 현재 야스쿠니 신사의 의미와 일본에게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인지, 또한 우리에겐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려주지 못한다. 물론 야스쿠니 신사가 지닌 의미가 워낙 다중적인 것이기에 처음부터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갔다, 큰일났다!”라고 누군가 떠들면 찾아보다 지친 이들도 그저 입을 모아 “큰일났다, 큰일났다”를 반복하다 시들해 진다. 자, 이젠 알아보자. 여기 당신의 궁금함의 지침서가 될 영화 한편이 있다.

<안녕, 사요나라>는 한일공동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다. 태평양전쟁 후 불행한 과거를 지니게 된 한일간의 과거에 이별을 고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반기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목처럼 한국의 김태일 감독과 일본의 카토 쿠미코 감독이 공동으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소송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족 이희자와 일제 강점하 한국인의 피해 보상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 후루카와를 중심으로 한다. 두 사람은 1995년,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죽었던 일본 고베에서 처음 만나 힘겨운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소송을 벌인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군국주의의 산물인 야스쿠니가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 따라가며 한국뿐 아닌 일본과 중국, 대만 등 태평양전쟁의 희생자와 유족들을 만나며 일본의 우익과 양심있는 활동가를 만나게 된다. 아시아 국가를 넘나드는 방대한 인터뷰와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 이희자와 후루카와는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축으로 일본과 한국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일본에 의해 아버지를 빼앗긴 이희자의 미움은 양심있는 일본인 후루카와와 활동가들을 통해 치유되며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국민인 후루카와는 이희자와 한국의 활동가들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애쓴다.

교과에서는 턱없이 얄팍한 수준으로 밖에 언급되지 못한 태평양전쟁의 아픔과 자극적으로 언급되어온 한일관계. <안녕, 사요나라>는 그간 제대로 조망되지 못한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해 태평양전쟁으로 희생된 아시아인들이 일본의 전범들과 합사되어 있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관객에게 그동안 알지 못한 진실을 전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는 애초의 기획처럼 평화로운 아시아를 위한 노력이다. 일본 전후 60주년, 한국 해방 60주년을 맞은 올해는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다.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를 직시하고 보듬어야 가능한 일이다. 뭔가를 알아야 친구가 되든 원수가 되든 할 것 아닌가. 물론 이 영화가 지닌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를 다루는 방식에 불편함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불편함이 영화를 관람한 후 새로운 역사쓰기에 동참할 당신의 기폭제가 되길 소망한다.

이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파상을 수상하고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에서 상영, 한국의 인디다큐페스티벌 2005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안녕, 사요나라>는 11월 말 전국에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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