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만화뒤집기
페르시아의 소녀, 또 하나의 편견을 깨다!
『페르세폴리스』(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신성식  
조회수: 2576 / 추천: 43
한국사회에서 이슬람 문화 또는 중동의 사회에 대한 편견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서구 기독교 문화권의 일방적인 시각이 아닌 다양한 시각의 관련 서적들이 나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만화뒤집기’ 꼭지의 전 필자인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도 우리에게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준 대표적인 저작 중의 하나이다. 책 뿐만 아니라 영화나 다큐멘터리, 방송 등에서도 예전과 다른 관점의 작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고 보면 영화가 제일 앞섰던가?

내가 본 사막을 배경으로 본 영화라고는 <사막의 라이언>이나 <아리비아의 로렌스>정도고 터번을 두르고 있으면 대부분 악당으로 묘사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편의 색다른 영화가 나타났으니 그게 바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개봉일이 1996년으로 되어있다. 벌써 10년 전이다. 아니지, 이제 겨우 10년이라고 해야겠다. 이슬람권 문화를 포함해서 일방의 시선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된 것이 이제 겨우 1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관용(똘레랑스)’이란 말의 의미를 집어 보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부터다. 그것도 명망있는 지식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파리의 한 택시운전사 덕분이었는데... 아차차, 이야기가 한참 샜다.

좋은 작품들로 인해 인식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작품을 보면 여전히 많은 편견을 갖고 있음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 이슬람 여성이라면 당연히 쓰고 있을 것 같았던 베일 ― 보통 차도르라고 부르는, 가리는 정도에 따라 명칭이 다 다르던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 이 모두가 반드시 썼던 게 아니라는 것부터 진보적이면서도 한편 보수성을 갖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할머니까지 온통 첨 듣는 얘기이다.

가령 할머니의 향기 나는 푸근한 가슴에 대한 비밀은 탄성이 절로 난다. 이처럼 『페르세폴리스』는 처음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텐데, 어린 소녀의 생각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어른스럽기도 한 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빨간칠에 질려있는 한국 사회에선 기대하기 힘든 어린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왜냐면 이 소녀는 마르크스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만화로 마르크스를 존경하게 된 어린이이다. 또한 이란 왕조의 위대한 후손으로서 소녀는 선지자가 꿈이다. 마르크스주의자 선지자라! 선지자를 꿈꾸는 소녀는 신과 대화를 한다. 소녀에게 신은 마르크스와 닮았다. 다만 마르크스의 머릿결이 좀더 곱슬이라는 부분은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독자라면 이런 상상력과 또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에 한참 놀랄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통해 현대와 왕조, 석유와 전쟁, 혁명, 근본주적 종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에 더욱 더 와 닿는다. 게다가 이 배경이라는 것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란이라고 하는 나라가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이기에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네 나라 얘기니까 난 당연히 모르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중동의 문제가 단순히 중동만의 문제가 아닌 지금,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한국 역시 테러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단순히 모르는 것이 아니라, 편견을 갖고 있다면 그건 핑계로 도망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 편견의 바탕이 나도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시각에 기대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페르세폴리스』는 그런 편견들을 모두 깨어버린다.

형식적으로 보면 우선 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시선을 잡는다. 배경도 간결하다. 이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비하자면 훨씬 분명한 선을 사용한 점과 한 쪽 전체를 이용한 장면 처리 등에서 세련된 맛이 느껴진다. 여기서 세련의 의미는 그저 도시적이라거나 시골스럽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툴지 않다는 의미에서 『쥐』에 비하면 깔끔하고 망가에 비하면 거꾸로 인간미가 묻어나는 선이다. 이런 선 처리는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처럼 잡다한 편견이 껴들 틈을 주지 않는 듯하다. 한편 검은 색이 주는 무게감은 암울한 상황을 나타내는데 적절하게 쓰여 졌고 흑백이 익숙한 세대에겐 많은 유럽 작품(보통 60쪽 양장본 칼라)과 비교하여 당연하게도 거부감도 별로 없다. 일부러 몹시 건조하게 그렸던 『쥐』에 비하여 칸의 크기도 훨씬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한 선을 이용하면서도 이란 냄새를 느낄 수 있는, 한마디로 개성이 풍부한 작품이다. 1권만 출간된 것이니 당장 2권이 기다려진다. 14살 소녀가 박해를 피해 이란에서 나오기까지의 이야기가 1권의 내용이고 2권은 유럽의 생활과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하니 크게 기대해도 좋겠다. 아울러서 이참에 『팔레스타인』(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글논그림밭)을 함께 본다면 중동 분쟁에 대한 웬만한 편견은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매우 골치 아프고도 민감한 미군 문제 등도 이렇게 객관적 시각의 만화로 그려내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읽혀진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페르세폴리스』를 보라. 만화의 힘을 보여주지 있지 않은가.

자 이제 책을 펼치고 쭈욱 빨려 들어가 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가 그냥 중동이라고 생각했던 땅덩어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1400년 만의 두 번째로 벌어진 이라크의 침공에 대해 ‘나는 ... 이 아랍놈들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페르시아 소녀의 다짐과 함께 킴 와일드의 포스터에 열광하며 나이키를 신고 즐거워하는 이란 소녀의 감성을 동시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한마디.

세상에. 이란! 여기도 장난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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