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기획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문화다양성 협약의 한계와 향후 과제

정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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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캐나다는 올해 유네스코(UNESCO)가 채택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아래 ‘문화다양성 협약’)을 국회의원 만장일치에 의해 세계 최초로 비준하였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도 여야 4당 국회의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문화다양성 협약의 국회 비준을 결의하기도 했다. 문화다양성 협약 비준을 위한 이런 국내외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위협받아 온 문화의 가치를 신속하게 복원하고, 문화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으 로 풀이된다.
이와 더불어 최근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들과 문화관련 전문가들은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속한 국회 비준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협약 체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약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고, 인권으로서의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한 향후 과제를 신중하게 제시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
이 협약의 한계점을 제기하고 있는 대표적인 해외 단체는 ‘커뮤니케이션권리캠페인(CRIS, 아래 ‘크리스’)’이다. 크리스는 성명을 통해서, “협약의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저작권조항의 내용이 2001년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 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정보의 확산을 위한 저작물의 공정이용이나 공공영역의 중요성이 이 협약에서는 강조되지 않았고, 특히 현재 초국적인 지적재산권 기업들에 의해서 전통지식이나 원주민 공동체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문제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것은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의 강화가 문화의 발전과 확산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자본의 이해에 의한 정보독점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크리스는 또한 ‘다른 조약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명료하지 못하여, 자칫 국가간 무역 협상 과정에서 이 협약이 무시될 수도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본 협약 제20조의 2는 “이 협약 상의 어떠한 규정도 자신들이 당사국인 다른 여타 조약상의 권리 및 의무를 변경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외교통상부는 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제20조가 다른 협약의 권리와 의무를 변경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인권단체인 인권운동사랑방(아래 ‘사랑방’)도 크리스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들은 논평에서 “한국 정부가 협약 채택 이후에도 문화다양성 협약이 자유무역협정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왜곡된 해석을 표명하며, 협약의 의의를 손상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양자간무역협정에서 해당 국가들이 이 협약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 국가들 내에서는 이 협약의 내용이 크게 실효성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제기도 있다. 이런 우려는 미국의 기술에관한소비자프로젝트(CPTech)라는 단체가 지적했다. 특히 이 협약의 체결을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미국의 경우 양자간무역협상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제외하자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크리스는 이런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우선적으로 각국 정부들은 국회비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민사회는 곧 홍콩에서 열리게 될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비롯해서 향후에 있을 양자간·다자간 무역협상을 면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간 협상 과정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제외되거나 그 의미가 퇴색될 경우 시민사회가 즉각적으로 대응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화공공성의 기반을 확대할 때
사랑방은 문화다양성 협약의 조속한 국회 비준 이외에도 문화다양성이 사회적으로 보장되기 위한 더욱 근본적인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단체는 앞서 언급한 논평에서 “문화권의 쟁취는 국경을 기준점으로 삼은 ‘자주권’의 확보로 충분치 못하다”고 지적하고,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산업적 측면의 ‘문화’를 지양하고, 문화공공성의 기반을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화권이 인권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구성원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문화적 기반시설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대학교 강내희 교수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강교수는 ‘문화다양성, 세계화, 그리고 교역’이라는 글에서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을 언급하면서 문화의 공적성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화다양성 선언의 서문은 문화가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특유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로 간주해야 하며, 예술 및 문학 형식 뿐 아니라 생활양식, 함께 사는 방식, 가치 체계, 전통과 신념을 포함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내희 교수는, “여기서 문화는 하나의 사회나 공동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 전체라고 설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볼 때 문화는 그 사회 또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자산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공공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적으로 문화적 권리장전의 채택과 문화다양성에 대한 사회 제도적 교육의 실시 등을 제안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 실천을 위하여
강내희 교수는 추가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문화적 실천과 참여, 그리고 활동을 의미하는 ‘문화민주주의’의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간의 문화에 대한 정책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화의 획일화를 막고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이주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청소년 등의 다양한 문화들이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또한 그것을 향유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실천을 주장하고 있는데, 문화다양성 협약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문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정보공유연대 IPLeft는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저작물을 자발적으로 오픈할 수 있는 정보공유라이선스라는 것을 개발하고 사회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런 실험은 문화적 공공성과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 출발점에 있다고 보인다. 협약의 국회비준을 넘어서서, 국제적으로 이 협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국내적으로는 인권으로서 문화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문화주체들의 보다 진지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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