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Cyber
사용자의 일방적인 CCTV설치는 정당한가Ⅱ
노동자의 인격적 권리를 위협하는 기술적 장치에 의한 감시

안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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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대응책으로 CCTV 등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감시장비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업무의 최적화를 꾀하고,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각 공정을 모니터한다는 목적 하에 도입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사용자가 시설관리권과 노무지휘권에 기하여 노동자에 대한 노무관리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작업공정을 관리·감독하며 근무성적을 파악하여 인사관리의 자료로 이용하고,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안전관리나 사업장 내의 상품관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노동자의 근무 상황을 감시하는 조치 역시 기업 내부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본다면 노동자가 근로시간 동안 사업장 내에서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동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의 감시·감독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므로 사용자가 CCTV 등의 장비를 통해 감시·감독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현재 노동부도 이와 유사하게 사용자의 일방적인 CCTV설치에 관해 ‘경영상 필요에 의한 정당한 업무지시권’의 범위 내의 행위(2002. 6. 25. 근기 68207-2256)로 판단하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 점차 확대되고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있는 새로운 기계적 장치 등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노무를 감시하는 관리·감독의 방법은 예전의 사용자나 관리자에 의한 인적 감시·감독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계적 장치를 사용한 감시방법은 사용자나 관리자 등에 의한 인적 감시방법의 경우에 비하여 통상 비밀리에 행하여지는 익명성이 있고 중단 없이 계속되며 완전하고 철저한 전면적인 감시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피감시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감시되고 관찰되고 있다는 심리적 중압감을 중단없이 부여하는 것이고, 일방적으로 관찰된다는 점에서 굴욕감까지 안겨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지속적이고 철저한 전면적인 감시가 노동자들에게 정신질환을 야기한 사례는 이미 여러 건 알려진 바 있다. 기계적 장치에 의한 감시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업무상 재해로서 인정받아 사후에 보상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 결과가 발생하기 이전, 즉 기계적 장치에 의한 감시가 도입되는 과정에서부터 이를 적정하게 제어할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노동자 감시에 대한 제한 논리는 주로 프라이버시권(헌법 제17조)을 그 근거로 삼아 왔다. 프라이버시권은 본래 개인의 사적영역이나 비밀이 공개되거나 누설됨으로써 침해받는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방어적인 권리였으나, 현재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량으로 유포되고 확산되어 있는 정보들 속에서 자기의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로 해석되고 있고, 이러한 맥락속에서 신기술과 함께 도입되는 장비에 의한 감시의 결과로 수집되는 정보에 대한 정보주체인 노동자의 개입권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권이 그 주요한 논거의 하나가 됨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계적 장치를 이용한 감시로 인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미 도입된 감시방법에 의해 수집된 정보의 문제라기보다(물론 인적 감시방법에 의해 수집된 정보와 기계적 장치를 이용한 감시방법에 의해 수집된 정보 사이에도 질적인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이전 단계인 감시방법 자체의 변경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권을 근거로 삼는 논리는 그 한계가 있다.
물론 명확한 해결은 입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긴 하나, 신기술 도입에 수반되는 기계적 장치를 이용한 감시에 대한 제어 근거는 노동법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되고, 우리 헌법 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이 그 기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헌법규범에 기초를 둔 인간의 존엄성 보장, 즉 인격권 보호란 기준은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인간적 요구에 적합한 노동을 적극적으로 편성할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근거가 될 수 있고, 사용자의 위와 같은 의무를 노동법의 영역에서 문제삼을 경우 반드시 개별적 근로관계에서 개별 노동자에 대한 권리침해로서 그 의무 위반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의 문제로서 사용자의 결정권한에 대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가와 관여를 통해 사용자의 구체적인 의무가 정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까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사업장조직법(Betriebsverfassungs- gesetz)에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행동과 업적의 감시를 예정한 기술적 장치의 도입과 그 이용’(제87조 제1항 제6호)에 관한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는 사업장평의회(Betriebsrat)와의 공동결정(Mitbestimmung)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여, 기술적 장치를 이용한 노동자 감시로 인하여 기본권에 기초한 노동자의 인격적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집단적인 규제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이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고 하여 사용자의 일방적인 감시장비의 도입이 모두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기술적 장치에 의한 감시는 피감시자인 노동자의 인격적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이 매우 크므로, 그 법익 보호 요청에서 파생되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독일의 경우, 위 사업장조직법에 의한 규제와는 별도로 예를 들어 한 방향에서만 투시할 수 있는 유리를 설치하여 작업장을 감시하거나, 테이프 레코더 등 녹음장치나 폐쇄회로 카메라 등 촬영장치 또는 VTR 등 시청각장치 등을 사용하여 노동자의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도청하거나 촬영하여 노동자를 감시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러한 감시가 노동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감시·관찰되고 있다고 하는 강한 심리적 고통이나 그 방법에 따라서는 모욕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가사 실제로는 계속적인 감시가 행하여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노동자 쪽에서 그것을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감시에 대한 아무런 방어의 방법이 없는 것 자체가 주는 정신적 중압감에는 하등의 차이도 없으므로 노동자 개인의 인격적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사용자의 노무지휘권 행사의 한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그 도입 자체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적 견해이다. 또한, 독일 연방노동법원도 사용자가 점포에서의 도난을 예방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촬영용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자 판매점원으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가 그 설치금지를 청구한 사안에서, “사업장 내에서 카메라에 의한 비밀 감시는 근로자에게 항상 끊임없이 계속되는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이러한 종류의 감시가 허용되기 위하여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이고 우월적인 이익이 있음을 사용자가 입증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할 것인데 당해 사건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판시{BAG 1987. 10. 7.자 판결, AuR (1987), 415}하여 청구를 인용한 사례가 있다.

결국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서 통상 사용자나 관리자 등에 의한 감시·감독을 수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술적 장치에 의한 노동자의 감시는 노동자의 인격적 권리 보호의 요청으로 인해 노사 양당사자의 법익이 긴장관계에 있어 양 법익의 비교형량에 의하여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는 문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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