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사이버
아시아 여성과의 연대에 관해 사유하기
대항 담론으로서의 아시아를 고민한다

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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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니네트워크에서는 감자모임이 있었다. 감자모임은 매월 월례포럼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이번 모임은 언니네트워크 국제연대팀에서 아시아 여성 연대에 관한 방향과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준비된 것이다. ‘아시아 연대를 모색하며 : 대장금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제목이었는데, 함께 활동하는 친구가 여름에 대만을 방문해서 현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났지만 서로 알고 있는 소재가 한국 드라마 ‘대장금’ 밖에 없었다는 경험을 문제시 한 제목이다. 그 동안 서구 중심적인 정보 흐름으로 인해 미국, 또는 유럽의 많은 나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대만에 대해서는 거의 알고 있는 것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국제연대팀은 2004년 11월 언니네트워크 창립이후 ‘서구=세계’라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아시아 여성들간의 연대를 통해 기존의 서구 중심적인 연대 방식에 균열을 가하며 새로운 소통을 모색하기 위해 구성된 팀이다. 여기서 아시아는 지리적 구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권력의 중심역할을 해왔던 서구와, 타자로 위치해 왔던 ‘아시아’라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대항 담론으로서의 아시아’라는 의미한다. 아시아가 국가는 물론, 인종, 문화, 계급, 종교 등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단일한 아시아의 이미지를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지향에 대한 실천의 한 방법으로, 아시아의 여성들과 국가간의 경계를 넘어서 직접 정보를 주고받는 대안적 형태의 소통을 위해 사이트를 개설했고, 사이트 명칭을 ‘@asia(http://asia. unninetwork.net/)’라고 하며, 우리의 지향을 부각시켰다.

@asia 사이트에서는 국내의 페미니즘 이슈들을 소개하고, 아시아의 여성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에 있는 여성 관련 단체의 영문사이트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asia의 특징은 서구의 다국적 언론 매체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아시아 여성들의 소식을 교환함으로써 서구 중심적 정보 흐름을 해체하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소통이 자국의 언어가 아닌, 아시아의 어떤 언어도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뼈아픈 현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어가 서구의 언어라고 한들, 그것을 사용해서 아시아의 특성과 문화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언어로 전유하는 방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영어를 연마해서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가지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이트를 처음 오픈하고, 사이트의 운영취지를 담은 장문의 긴 메일을 써서 아시아 및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없었다. 반응이 없는 공간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고, 서툰 영어로 새로운 내용을 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가 보는지도 모르는 사이트에 힘들게 영어로 써서 글을 올리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애초에 폭발적으로 번창하지는 않더라도, 아시아 여성 연대의 물꼬를 터주면서 소통의 창구로서 기능하리라는 기대는 점차 사라지고,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사이트를 기획하고, 방향을 논의했던 팀원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asia 사이트 운영에 관한 어려움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팀 내에서 지향했던 연대의 방법과 목적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했다. 언니네트워크는 여성주의라는 지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매매’, ‘성폭력’, ‘노동’ 등의 특정 이슈에 대한 전문적인 운동을 행하는 단체가 아니다. 여성들의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여성주의를 알려나가는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막연함이 존재했다. 이 ‘막연함’으로 인해 팀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아시아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와 ‘연대’라는 두 언어의 의미에 대한 사유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과연 아시아 여성과의 연대는 무엇인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단체를 만나서 그들과 무엇을 함께 해야만 연대인가? 이러한 물음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왜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아시아의 여성들을 만나려고 하는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한국에도 시급한 문제들이 많은데, 아시아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지구화 시대에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국가간의 긴밀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실제적으로 국가의 경계를 넘어 대규모의 이주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적절한 물음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 해서 온 여성과 이웃하여 살고 있거나, 이들을 위한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국제적 이슈는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당면 과제들 속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중에 생각해 보아야 할 의제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해외로 여행을 가고, 크고 작은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길을 지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며,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지구의 소식을 들을 때면 아시아관련 이슈들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단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의 M구에 살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서 아시아, 지구에 살고 있는 ‘나’로서 인식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연결지어서 사유하는 방법이 시도되어야 한다. 어떻게 서로가 가해와 피해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단순한 개인 또는 국가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또는 전지구의 문제인지를 사유하는 것도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소통이 어긋나고, 충돌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서로에 대한 ‘앎’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서구중심적이고 자본주의적이며, 가부장제적인 질서를 바탕으로 한 정보 흐름에 균열을 가하려면 의도적으로 아시아의 다양한 여성들의 삶과 문화, 정치, 경제, 언어 등을 알기 위한 노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를 실천하는 형태도 다양화해야 한다. 아시아의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거나, 인신매매를 막기위해 빈곤한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거나, 아시아 여성들의 문제에 관한 고민과 이슈 파이팅을 통해서 연대는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조금은 더디더라도 여성주의적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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