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장애없는
통신중계서비스, 좀더 속도를 내야한다
청각·언어장애인도 전화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소장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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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혼자다. 약속도 없다. 배는 슬슬 고파온다. 귀찮은데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아니 라면도 귀찮다. 자장면이나 배달시켜 먹어야지! 군만두도 시킬까?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신! 틀렸다. 청각·언어장애인은 절대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은 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 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자장면 배달을 못 시키는 차원을 넘어선다.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왔거나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려봐라. 안절부절 못하는 당신의 모습을...

사실 청각·언어장애인이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청각·언어장애인도 전화를 사용해 마음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바로 ‘통신중계서비스’(TRS, Telecommunication Relay Service)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는 청각이나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비장애인이나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전화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음성 통화를 할 수 없는 청각·언어장애인이 인터넷이나 영상전화기로 중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중계자가 전화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주고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 다시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이 서비스는 구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1월 2일부터 이 서비스가 시범사업으로 실시되고 있다. 현재 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약 90명의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선발해 본격적인 통신중계서비스 시범운영에 돌입한 것이다.

이 서비스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용방법에 따라 문자중계서비스와 영상중계서비스로 나뉘어 진다. 먼저 문자중계서비스는 청각·언어장애인이 통신중계센터 홈페이지(www.relaycall.or.kr)에 접속해 문자로 통화내용을 입력하면 중계자가 음성으로 상대방에게 통화내용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통화내용을 다시 장애인에게 문자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영상중계서비스는 영상전화 또는 컴퓨터(웹 카메라)를 이용해 청각·언어장애인이 수화로 통화내용을 전달하면 중계자가 음성으로 비장애인에게 통화내용을 전달하고 비장애인의 통화내용을 다시 장애인에게 수화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선진국에서 이 서비스를 도입한 것은 1990년대 초반. 현재 미국, 영국,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나라가 24시간 내내 실시간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나라들은 서비스에 필요한 단말기의 보급, 통신요금의 감면 등의 제도도 병행해 시행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청각·언어장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A씨는 이용자후기 게시판에 글을 남겨 “안부전화를 하고 이사계약을 하고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고 정말 좋았어요”라며 기쁨을 표시했다. B씨는 “제가 직접 전화할 수 있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고 신기하네요. 전에는 직접 다른 사람한테 가서 부탁하고 전화하니까 좀 그랬는데 ‘TRS’ 덕분에 많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고 말했으며, C씨는 “제가 직접 이 서비스를 통해 중화요리에 자장면 한 그릇 시키려고 합니다”라고 글을 적었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할 점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크게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사항은 현재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인 사용시간이 제한돼 있는데 본격적으로 이 서비스를 시행할 때는 24시간으로 서비스 시간이 늘어나야한다는 것. 또한 현재 3명의 중계사가 90여명의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접속 폭주로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 점을 감안해 본격적인 시행과정에서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해야한다는 점도 대표적인 지적

사항이다. 모두 충분한 예산확보가 관건인 사항들이다.
하지만 예산확보와 함께 수화통역이 가능한 중계사 등 전문인력 양성, 단말기 보급 등과 관련한 제도의 정비 등도 필수적으로 뒤따라야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관계자는 “예산이 당장 대폭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중계사 역할을 하는 수화통역사 교육문제 등이 있어 서비스의 본격 도입은 어려움이 있다.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사안”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예산이 너무 적다. 올해 예산은 2억원이었으며, 내년 예산은 4억원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시범사업 차원에서 서비스가 실시될 수밖에 없는 규모이다. 그동안 전화를 이용할 수 없었던 청각·언어장애인의 답답함을 풀어주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적은 예산이다.

마지막으로 이 서비스를 처음 이용해봤다는 한 청각장애인의 글을 옮겨본다. 왜 이 서비스에 대한 예산 확보와 관련 제도 정비가 절실한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처음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동기는 선배 때문입니다. 선배 집에서 선배님이 저보고 뭐 먹을까하면서 물어봤는데 밖에 가서 사 먹지 않고 집에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전 당황했었죠. 설마 아는 사람이나 경비아저씨한테? 아님 통역사한테 문자연락을 통해서?
그랬더니 그냥 집에서 인터넷을 통하면 가능하다고 그러면서 보여줬습니다. 선배님도 가입해놓고 아직까지 이용 안 했죠. 어제 처음 이용해봤거든요. 의심 반 기대 반 막 부탁해보더니 참 편리하네요. 제가 마치 직접 전화해서 주문한 것처럼 말이예요. 정말 좋네요. 정말 고마웠고요. 앞으로도 많이 이용하고요 주변사람한테 널리 알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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