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교육과
법과 교육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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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과도 같은 적막에 휩싸인다.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수능이 가진 영향력이 교사의 권위보다 강력한지 아이들은 무심하고 지루해한다.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가수나 연기자가 와서 놀아주지 않는 한 길게는 한달 정도 이런 무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할 일이 많은 교사들 또한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게 소외인가 보다.
그러나 더 소외받는 이들이 이번 수능을 통해 탄생했다. 수능부정행위자로 올해 시험은 물론 내년에도 시험 볼 권리를 박탈당한 학생들이다. 아버지의 핸드폰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 시험을 보러왔다는 아이부터 시험을 보던 중 MP3를 제출하라고 해서 제출했더니 부정행위자가 된 아이까지 그 의도가 어떠했던 가와는 전혀 관계없이 부정행위자가 된 아이들이다. 대학을 가야 뭔가 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강제 속에서 2년간 대입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포기하라는 얘기와 같이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외가 아니면 무엇일까...
부정행위자로 분류된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옹호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필자 역시 교사로서 수능 감독을 2번씩이나 했었고, 정해진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정행위를 실제로 했는가 안 했는가라는 문제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만약 그 규칙에 문제가 있다면?
이번 수능부터는 지난해 수능부정의 여파로 모든 규정이 강화되었다.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는 가지고만 있어도-즉, 반입만 하여도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다면- 부정행위로 간주당하며, 시험 시간 중 화장실에 가야하는 경우에는 금속탐지기로 몸수색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감독관의 지시에 불응하는 경우에도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물론 시험을 보는 데 필요 없는 기기를 가지고 갈 이유도 없으며, 길어야 두 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감독관이 뭐라 지시할 일도 없을 것이니, 이런 규정을 잘 지키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 아니던가. 칼 맑스의 원전 하나만 가지고 다녀도 공산주의자라는 굴레를 덮어씌워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던 법.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불심검문이라는 이름으로 사생활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방을 열어야만 했던 기억.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했던 그 시절 그 모습이 올해 수능 시험장에서 벌어진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법 감정으로서도 잘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라 생각한다. 하물며 교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올 수능 시험장에서의 규정은 너무 행정편의적인 것은 아닌 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미 부정행위자로 인정된 학생들을 구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 내년도 수능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교육은 원칙적으로 결과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과정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그 가치가 배가되며 적절한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부정행위로 인정되는 행위를 했으나, 그 과정에 대한 고려를 할 수는 없을까? 법률이라는 잣대로만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속에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적인 고려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부정행위자로 인정된 학생 몇몇이 헌법소원이라는 법적인 틀을 통해 항의의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법적인 결론이 나기 전에 교육적인 고려를 했으면 한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한 번 더 살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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