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사람들@넷
보육의 공공성을 고민하는 보육교사들의 방
전국보육노동조합 http://kcwu.nodong.org

이은희  
조회수: 3371 / 추천: 53
진보네트워크센터 홈페이지의 아래쪽, 배너가 모여있는 곳에 얼마 전부터 초록색 배너가 떴다. “북한에서 온 그림동화책, 령리한 너구리”. 보육노조가 추천한다는 말에 솔깃해 클릭해보면, 령리한 너구리가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주는, 그것도 북한 말의 표현을 살려서 설명해주는 동화책 5권을 시중가보다 싸게 팔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를테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둔 공동구매인 셈이다.

행복하게 자랄 권리, 행복하게 일할 권리
보육교사는 ‘여성부로부터 그 자격을 인정받아 0~6세 미만의 영유아를 정규기관에서 보호·교육하는 교사를 의미’한다. 주로 어린이집, 놀이방, 보육정보센터, 보육관련 기관 등 보육시설 또는 보육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다. 지역공동체운동, 야학운동, 놀이방운동 등과 궤를 함께 하는 지역탁아운동의 연합인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에서 출발한 보육교사들의 모임인 한국보육교사회는 97년 설립되었고, 01년부터는 보육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중장기계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2004년 1월 보육노조의 출범이다.

지금은 보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몇년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늘어나, 어디서나 쉽게 놀이방과 어린이집을 찾을 수 있다. 보육교사 양성과정을 통해 배출된 보육교사들의 수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처럼 양적 확충에만 치중되는 보육정책의 결과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을 아이들과 교사들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적으로만 늘어난 보육시설은 보육교사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대고 있고,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율은 전국 25,000개가 넘는 보육시설의 5%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속에서 보육노조는 “인권보육 실현, 보육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보육의 공공성 쟁취, 보육현장 개혁”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많은 보육노동자가 보육의 질을 높이고 보육 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 보육노동자 자신의 노동조건이 향상되지 않는 한 보육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인터넷을 매개로
많은 조합원들이 장시간 노동에 지쳐 인터넷 사용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조합원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만큼 보육노조는 인터넷을 이용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령리한 너구리 배너를 클릭하면 인터넷에서 바로 동화책 구입을 신청할 수 있고, 12월 초에 열리는 보육노조의 감사선출 투표는 온라인 투표로 이루어진다. 보육노조의 홈페이지에는 이외에도 노조일정 공유, 활동보고 등 다른 노조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메뉴에서부터 보육교사들의 상담, 토론방, 보육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열린 마당, 조합원 마당까지 조합원 참여 메뉴가 많다. 보육노동자들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도 진행중이다.

보육노조원인 쭌모님이 연재하는 칼럼 ‘곰곰이 생각’은 조회수가 수백 회에 달하는 인기 칼럼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힘든 노동을 하루 평균 10시간이상 하고, 월급은 평균 80만원을 조금 웃도는 보육교사들의 고단한 현실. 이런 보육교사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정부 정책을 꼼꼼하게 뜯어보고 비교하는 날카로운 칼럼이다.

보육은 아이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최초의 평등
국가가 민간 보육시설의 난립을 허용한 결과로 대부분의 보육기관은 영세하고 영리화되어 있는 형편이다. 10만여명이 넘는 보육교사들의 대부분은 취사업무나 청소, 사무 등의 업무도 겸임하고 있고, 보육이라는 돌봄 노동의 특성상 단순한 서비스 노동이 아니라 긴급성과 강제성이 동반되고 있는데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만을 강요받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시설이 대부분이라는 현실은 많은 보육시설이 시설비리와 파행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보육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그 자체로는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영리적인 보육시설이 많다는 것은 결국 보육노동자와 아이들의 착취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육의 공공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보육노동에 대한 대가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돌봄 노동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확립되는 것도 필요하다.

보육노조는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함께 보육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보육지원방식이나 보육 구조의 다양화, 더 나아가서는 인권보육과 무상보육을 주장하고 있다. 지자체별, 계층별로 보육수요의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보육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보육을 받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낮은 출산율 등 다른 문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높아진 성격이 있어서, 아이들과 보육교사를 모두 생각하는 인권보육도 절실하다. 무작정 지원만 늘려서는 보육의 공공성이 담보될 리 만무하다. 공공성이 확보된 무상보육을 위해, 보육교사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보육노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