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영화
공격적이 되어라!
수많은 차별에 대한 <별별 이야기>

이지연  
조회수: 4305 / 추천: 65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의 인권감수성 함양과 인권교육을 위해 3번째 제작한 <별별 이야기>는 그전의 <다섯개의 시선>, <여섯개의 시선>과 맥을 같이 하며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6명의 애니메이션감독이 함께한 옴니버스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판타지적이고 부드러운 강점을 이용한,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별별 이야기>의 오프닝은 장애를 지닌 딸과 그의 아버지의 꿈을 그린 <낮잠>이 맡는다. 평온한 오후 생김새도 자는 버릇도 똑 닮은 두 부녀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장애인 시설을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 재현한다. 장애를 지닌 이들에 대한 챕터이다. 그 외에도 사회적 소수자를 양떼무리에 섞이기 위해 노력하는 염소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동물농장>, 사회적 남녀역할에 대해 꼬집는 <그 여자네 집>,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한 <육다골대녀>, 이주노동자의 아픔을 보여주는 <자전거 여행>, 입시위주 교육현실을 질타하는 <사람이 되어라>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중 이애림 감독의 <육다골대녀>와 박재동 감독의 <사람이 되어라>가 눈에 띤다.

이애림감독은 전작 <연분> 등으로 특유의 색채감과 캐릭터, 판타지적인 이야기 방식으로 호평을 받은바 있다. 이번 <육다골대녀>에서도 그만의 정서를 지닌 캐릭터가 외모차별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빛을 발하고 있다. 큰 머리, 큰 뼈, 많은 살을 가진 막내의 외모는 고조에서 증조, 조부모에서 부모로 내려져 온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막내에게는 행복조건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획일화된 미녀들은 컨테이너를 따라서 행복의 길로 들어서고 막내와 유사한 외모를 지닌 이들은 수감소로 표현된 각자의 방안에 갇혀서 한숨을 뿜어낸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주제인 외모지상주의는 이애림감독 특유의 애니메이션에 힘을 빌어 설득력을 갖는다.

박재동 감독의 <사람이 되어라>는 다소 촌스러운 애니메이션 방식을 택하고는 있으나 스토리자체가 가진 힘은 단연 돋보인다. 공부만 강요하는 사회에 사는 원철이와 친구들은 ‘고릴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열심히 하려해도 따라갈 수 없는 획일화된 교육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원철이의 유일한 낙은 사슴벌레를 키우는 일이다. 어느날 사슴벌레를 따라 숲에서 다양한 벌레들과 친구가 된 원철이는 곤충연구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을 느낀다. 어느새 원철이는 고릴라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이 된 그의 외모를 보고 놀란 선생이 대학에 가야만 사람이 된다며 그에게 고릴라로 돌아가길 강요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힘으로 사람이 되었건만 마치 탈선한 청소년을 계도하듯 훈계하며 다시금 고릴라가 되길 윽박지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별별 이야기>는 애초 기획의도처럼 인권감수성을 함양하고 인권교육을 위한 목적에 적당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위에 언급했듯 그 전략으로 애니메이션을 택한 것부터 적절하다고 판단된다.(오해는 없길 바란다. 애니메이션 장르를 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도 드는 씁쓸한 기운은 뭔지 곱씹어 봐야 한다. 특정한 대상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영화이기에 보편적인 수위를 지녀야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영화에 보여지는 작품들은 최근 TV다큐나 시사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수의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장르를 다른 것으로 차용하기만 했을뿐 더욱 활발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고 극장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은 이미 일정정도의 인권감수성을 지닌 이들이라 할수 있다. (그 많은 블록버스터영화들 속에서 이 영화를 택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쉽게 짐작할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보편적인 인권감수성을 넘어 일침을 놓는 무언가는 준비해놓았어야 한다. 이 영화는 개봉 뿐 아니라 무수한 영화제에 상영된바 있다. 그 중 국내의 지역별로 있는 인권영화제들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제를 통해 얼마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했는지 의문이 아닐수 없다. 어찌되었든 극장으로 찾아오는 관객은 능동적인 관객이며 일정정도의 인권감수성과 인권교육을 받은 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문제는 그 외의 관객들이다. 인권에 대해 보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이 영화는 ‘인권’에 대한 개념이라고는 전무한 이들에게 조금 더 공격적으로 다가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영화라고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극장에 찾아오는 방법에 고충이 따라서(이 가운데 장애도 포함되어 있다.), 금전적으로 영화향유권을 지닐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또 하나의 차별을 적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권영화’라 자칭한다면 영화를 제작하는 것 이상으로 여타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의 배급방법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인권교육에 더할나위 없이 적당한 이 영화를 그들이 접하게 하기 위한 공세적인 배급 등이 그것이다. 극장에 단체관람을 유도하는 방식은 소극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 영화의 심각한 문제점은 보지도 않고 일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상업영화가 구민회관에까지 파고드는 요즘 구민회관과 학교의 대강당을 상업영화에 내어주고 뒷짐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의 차별에 맞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가운데 <별별이야기>가 지니는 미덕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방법을 영화로 택했다면 제작부터 배급까지 차별을 넘어서고 인권을 존중하는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진중하고 공격적으로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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