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1호 표지이야기 [무분별한 주민번호 수집실태]
주민등록번호, 폐지만이 대안이다.

지음 / 진보네트워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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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발표한 ‘주민등록번호 사용현황 실태조사 결과’는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을 막론하고 주민등록번호가 광범위하게 수집, 이용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태가 불러일으킨 심각한 위험이 리니지 대규모 명의도용 사태를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15만에 가까운 피해자가 확인됐음에도 아직도 빙산의 일각이다. 대략 2천만명, 사실상 전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암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지금, 주민등록번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면서 표면의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고 내부의 IC칩에 저장해서 주민등록번호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거나, 파악하고도 의도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는 것이 주민등록증을 통해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발표에서도 보이듯이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법정서식과 민간서식, 그리고 인터넷 회원가입 페이지들을 통해 직접 ‘유출’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시 한 번 유출되고 거래된다. 주민등록증은 최종적인 검증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주민등록번호를 IC칩에 넣고 이를 자동적으로 정확하게 수집, 저장할 수 있는 단말기를 보급하겠다는 것은 주민등록번호를 더욱 광범위하게 이용하게 해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상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대안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을 줄여서 더 이상의 유출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리고 너무도 늦은 대책 치고는 너무 미약하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고 있지만, 기업에게는 자율적으로 도입할 유인이 없다. 그리고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부도 기업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미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는 번호를 변경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현재의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모두 뒤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가장 효과적이고 또한 궁극적인 대안은 현행 주민등록번호의 폐지 뿐이다. 현재의 주민등록번호체계 자체가 정보인권의 보호에 치명적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다. 또한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이미 한 번씩은 유출된 상황에서 신원확인을 위한 식별자로서의 의미도 대부분 상실됐다. 주민등록번호의 폐지는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미뤄둘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물론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없애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가인권위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곤란함은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오던 관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일 뿐, 주민등록번호 그 자체가 없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곤란함은 아니다.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와 같은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얘기다.

주민등록번호의 사용제한, 대안 인증 수단 활용, 신분증의 개선, 별도의 개별 식별자 도입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즉각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이 최종적으로 주민등록번호의 폐지라는 목표 하에서 수행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주민등록번호 폐지 5개년 계획’이라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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