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1호 파워인터뷰
우리 모두의 지식, 위키백과
- 정경훈, 한국어 위키백과 관리자 (puzzlet@gmail.com)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조회수: 7208 / 추천: 70
인터넷 내에 갈수록 울타리가 많아지고 있다. 울타리 너머에 있는 지식을 접하기 위해서는 '이용료'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울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허락 없이 울타리를 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를 저작권법이라고 부른다)도 강화되고 있다. 저작권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아니 경제적 이익이 없다면 누가 지식과 문화를 생산하려 하겠는가?" 그러나 인터넷에는 원래 울타리가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지금도, 다른 사람의 접근과 이용을 막지 않고, 오히려 협력함으로써 더 훌륭한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위키백과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위키백과에 대해 생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월간 <네트워커>가 위키백과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경훈님을 만나 위키백과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오병일(이하 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경훈(이하 정) : 제 이름은 정경훈입니다. 위키백과에 PuzzletChung이라는 계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어 위키백과의 관리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오 : 위키백과에 함께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그리고 어떤 계기로 위키백과를 알게 되셨는지요?
정 : 2002년에 노스모크(http://no-smok.net/)라는 사이트에 있던 소개를 보고 위키백과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때 위키백과에 있던 글을 몇 개 고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봄부터였습니다.

오 : 위키백과는 어떠한 백과 사전인가요?
정 : 위키백과의 구호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참여의 길이 열려 있는 백과사전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홈페이지 대문
오 :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죠? 전 세계적인 현황이 어떻게 되는지요?
정 : 위키백과에는 국경의 장벽이 없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경우도 한국어만 알고 있으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실제로 여러 명의 외국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원칙적으로 국적이 아닌 언어별로 나뉘어져 있으며, 2006년 2월 현재 위키백과는 전 세계에서 쓰이는 214개 언어로 그 내용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오 : 위키백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 : 위키백과는 2000년에 시작된 전문가들의 기여로 이루어지던 백과사전 프로젝트인 뉴피디어(Nupedia)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1년 1월 뉴피디어의 창시자였던 지미 웨일스(Jimmy Wales)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모색하다가 위키백과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위키미디어에서 운영하는 자매 프로젝트
오 : 현재 '위키백과'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정 : 영문 위키백과에 있는 개별 글의 수는 2006년 현재 98만 7000여개로, 그 양만으로 따지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엔카르타를 합친 것보다 더 큽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2006년 2월 현재 2만여 개의 글이 있습니다.

오 : 그 정도 규모의 컨텐츠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는 운영비용도 만만치 않을텐데요. 사이트 운영에 필요한 수입은 어떻게 충당하나요?
정 : 관리자를 포함해서 모든 참여자들은 위키백과에서 자발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운영에 필요한 금액의 절반 이상이 서버 구입과 코로케이션(서버가 쓰는 회선과 장소 임대) 비용인데, 그 대부분이 역시 자발적인 기부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현재 야후! 코리아는 십수대의 서버와 코로케이션을 제공해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 무상으로 이루어진 기증입니다.
오 : 그런데, 다수의 네티즌이 함께 작업한다면, 컨텐츠의 질이나 정확성을 보장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정 : 위키백과의 기본적인 원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할 수록 각각의 분야에 대해 아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 토론을 통해서 더 질 높고 정확한 글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몇몇 면에서 이미 효과적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한 예로 2005년에 영국의 네이처(Nature) 지에서 자체적으로 42개 과학 분야에 대한 브리태니카와 위키백과의 기술을 전문가들에게 조사를 의뢰한 결과 오류의 개수가 각각 4개로 큰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 : 누구나 다른 사람의 글을 수정할 수 있다면 악의적인 이용자들도 간혹 있을 것 같은데요. 악의적인 이용자가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있는지요? 만일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하나요?
정 : 가끔 위키백과에 있던 내용을 삭제하거나 스팸, 또는 이상한 글을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모든 글의 최근 바뀐 내역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곧 다른 사람이 원래대로 복구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이용자의 계정이나 IP 주소를 일정 기간동안 차단할 수 있습니다.
오 : 위키백과의 내용을 누군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나요? 혹은 비영리적 목적으로 퍼 가는 것은 괜찮은가요? 위키백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지요?
정 : 위키백과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에서 창안해낸 GFDL(GNU Free Document License; GNU 자유 문서 라이선스)이라는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 따라서 위키백과의 내용은 상업적인 목적을 포함하여 어떤 목적으로든 쓸 수는 있지만, 위키백과의 내용을 가지고 만든 이차 저작물은 위키백과와 마찬가지로 GFDL에 따라 배포되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독일어 위키백과의 내용을 DVD에 담아서 판 적이 있었는데, 그 DVD 역시 위키백과의 내용으로 만든 이차 저작물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P2P 네트워크를 통해 iso 이미지(CD나 DVD에 기록된 자료 통째로를 그대로 한 파일에 담은 것. 인터넷에서 iso 이미지를 받아서 CD/DVD를 굽는 소프트웨어에 넣고 CD/DVD를 구으면 원본 CD/DVD와 정확하게 똑같은 내용이 담긴 CD/DVD가 구워진다)가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그 이미지 역시 GFDL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떤 목적으로든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내용으로 만든 이차 저작물을 배타적인 라이선스 하에 배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약 위키백과 DVD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iso 이미지를 P2P로 유통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라이선스를 위반하는 쪽은 네티즌 쪽이 아니라 오히려 판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위키백과의 저작권은 그 글을 쓰는 데에 참여한 사용자들에게 있지만, 그 모두가 그 글이 GFDL로 자유롭게 배포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저작권'이라고 부르고 있는 '배타적인 라이선스'는 없습니다.

오 :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합의하는 원칙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 : 위키백과에는 다섯 개의 대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키백과는 백과사전이다'입니다. 둘째로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서 중립적 관점이라는 정책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 국가나 단체 사이에 서로 다른 주장이 있으면, 이를 모두 밝혀 주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위키백과는 자유 라이선스로 배포되는 자유 콘텐츠(free contents)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위키백과에는 엄격한 규칙이 없다'입니다.
마지막 원칙이 말해주듯이, 위키백과에는 세부적인 점에까지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칙은 없습니다. 대신 사용자들의 대화와 이성의 판단에 맡깁니다. 위키백과에는 실제 내용인 본문 이외에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각각의 분야에 대한 편집 방향 등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 : 그럼 세부적인 규칙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정 : 위키백과에는 엄격한 규칙이 없다고 했지만, 규칙이 아주 없다면 혼란스럽겠죠. 보통 위키백과의 정책은 사이트 상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가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자고 제안을 하고 투표에 붙여서 가결되면 명문화가 됩니다. 하지만 유동적인 커뮤니티를 위해, 언제나 상황이 예외적이라고 판단될 때 대원칙이 아닌 이상 그 정책을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 : 대표나 운영진이 따로 있나요?
정 : 위키백과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은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위키미디어 재단입니다. 그곳에서는 기금을 모금하여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거나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지만 위키백과에 직접적인 참여나 개입을 하는 일은 적습니다. 각각의 위키백과의 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위키백과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입니다. 그리고 삭제하기로 합의된 글을 지우거나 악의적인 사용자를 차단할 권한을 가진 사용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관리자'라고 부릅니다.

오 : 그럼 관리자는 어떻게 선출하나요? 임기는 얼마나 되나요?
정 : 각 위키백과의 관리자는 투표를 통해 선출하며, 임기는 무기한입니다. 다만 관리자가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할 경우 역시 사용자들의 이성적인 판단과 합의에 따라 관리자 권한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 임기가 무기한인 것은 관리자에게 주어지는 정치적인 권한이 특별히 없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의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거나 이를 합의하기 위해 투표하는 데에 있어서 관리자는 다른 사용자들과 똑같은 권리만을 가질 뿐입니다. 관리자는 말 그대로 위키백과를 관리하기 위해 있는 직책입니다.

오 :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회의나 모임이 있나요?
정 :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올해 중으로 가볍게 만나는 모임 정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 : 한국에서는 위키백과가 언제 시작되었나요? 현재 몇 분이나 참여하고 있는지요?
정 :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에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등록된 계정이 2000개가 조금 넘으며, 계정을 등록하지 않고 활동하는 분도 있습니다.

오 : 프로그래머가 자유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비해, 사전을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정 : 저는 거의 위키백과에 빠져 사는데요. 위키백과도 뭔가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오 : 위키백과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극복해야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 : 위키백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참여가 부족한 것이 첫째 문제이고, 둘째 문제는 정작 참여하는 분들 가운데 위키백과의 정책이나 라이선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처음 참여하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다른 백과사전이나 블로그 같은 곳에서 글이나 그림 파일을 퍼오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 해당하는 자료를 일일히 지우는 데에 공연히 인력이 들어가게 됩니다.
오 : 위키백과에 참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지요?
정 : 쓰고 싶은 글로 가서 '편집' 링크를 누르고 글을 쓰시면 됩니다. 회원 가입 절차마저도 필요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싶다면 계정을 만들면 되는데, 이때 어떤 개인 정보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에 몇몇 언론에 '위키백과가 회원 등록제를 도입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는데, 이는 영문 위키백과와 일본어 위키백과 등 몇몇 위키백과에서 계정으로 로그인하지 않은 사용자들이 새 글을 시작할 수 없도록 정책을 바꾼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정책을 도입하지 않았으므로 계정을 하지 않고도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합니다.

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 :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을 자발적으로 모아 우리 모두의 지식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위키백과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위키백과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자유 프로젝트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뜻깊은 일에 참여해 주신다면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불균형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인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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