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1호 북마크
쉽게 읽히는 잡문집,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
- 몸으로 하는 공부 (강유원 저/ 여름언덕)

자일리톨 /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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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직장일과 개인적인 이유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쉽게 재미있게 어디에서나 짬짬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한다. 책의 제목은 “몸으로 하는 공부”이다. 책의 제목만 봐서는 머리를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라니...? 그러나 이 제목이 책 전체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대표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강유원씨가 몇 년 동안(그의 말에 따르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쓴 여러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내더라도 글의 구성, 형식, 배치, 심지어 머리말까지 충분한 공을 들이는 그이기에 이런 형식의 책을 내는 것이 미안해서였을까? 책의 외양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고, 자신의 책에 ‘잡문집’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며, 머리말을 ‘잡문’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 말은 과도한 겸손을 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각의 글은 충분한 완결성이 있는데다 재미나게 쓰여졌다.

책은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책의 제목과 관련된 부분인, 앎과 실천의 일치를 다룬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현대의 거대권력으로 떠오른 미디어와 지식인의 더러운 유착관계를 다룬 ‘책 따로, 세상 따로’, 모든 인문사회적 연구는 철저히 현실적 기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문화라 불리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학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룬 ‘학문의 현실적 쓸모’가 그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 드는 느낌은 강유원이라는 저자가 참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치 선비(탁상공론을 일삼으며 무위도식했던 선비라는 역사 속의 존재를 저자는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와 같은 태도로 꼬장꼬장하게 개념을 정리하거나 배경설명을 한 뒤 자신의 주장을 차근차근 펴 나간다.

그리고 일견 그는 아카데미즘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진정한’ 수구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학의 목적을 지식의 생산보다는 지식의 보존에서 찾으며, 책을 단순한 정보의 매개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완성하는 중요한 도구로 보아 한 글자를 쓰더라도 탈고에 탈고를 거듭하는 그의 경건함이나, 학교라는 울타리 안쪽을 선택한 지식인(학교라는 울타리 밖의 지식인은 이론의 실천과 현실적합성을 갖기 위한 이론의 치열한 수정작업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은 울타리 밖의 시류에는 관심을 끊은 채 수도승처럼 학문정진에 힘쓰라는 그의 주장, 그리고 고전에 대한 그의 애착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상아탑에 갇혀 있는 가련한 초월자는 아니다. 그가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회구성원들이 문제점을 공유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그 문제점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학 안의 지식인들의 역할은 대학 밖의 권력에 휩쓸림 없이 초연하게 개념을 정립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정의함으로써, 사회적 논의를 위한 든든한 진실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 따로 세상 따로’에서 현재 한국사회는 지식인들이 이러한 본분을 망각한 채, 정치경제적 권력 앞에 줄을 서는 ‘유기적 지식인’ 혹은 ‘기능적 지식인’으로 전락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를 위한 대안으로 아카데미즘의 강화를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심하며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며,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지만, 오히려 독자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채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단편적인 정보와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지하여,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나 목적을 물질로 간단히 치환하는 노예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정보나 재미와 같은 실용적인 이유에서나 지적허영과 같은 귀족주의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세계를 좀 더 이해함으로써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기 위해 더욱 짬을 내어 글 한 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 보이고자 하는 공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의 마음가짐으로 ‘머리’로 아는 것을 ‘몸’으로 함께 익히는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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