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2호 파워인터뷰
시청각 분야 개방, 미국의 '문화 제국'을 실현하는 것
영화에 이어, 통신, 방송의 연쇄적 개방 우려

오병일 / 네트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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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unacom@knua.ac.kr)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오병일(아래 오)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 FTA를 앞두고 각 영역의 대책위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규찬 선생님께서는 지난 3월 8일에 발족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시청각·미디어 분야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주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시청각·미디어'란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요?

전규찬(아래 전) : ‘시청각’이라면 쉽게 말해, 눈과 귀, 감각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모든 장르를 포함하는 것이고요, ‘미디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식으로 의미를 교환, 매개하는 매체로서 정의하면 되겠습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주체를 생산하는, 그리고 언론과 여론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부문으로서, 개방 협상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영역이 시청각 미디어거든요. 신문이나 출판도 물론 미디어에 포함됩니다만,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결정적으로 쟁점이 되는 게 바로 시청각 부문이거든요. 그래서 시청각 미디어에 보다 방점을 찍고 운동을 집중시키기 위해, 공대위 이름도 그렇게 붙였다고 보면 됩니다. 양자간투자협정(BIT), WTO, FTA 논의에서 실제 사용되는 게 바로 ‘시청각’ 혹은 ‘시청각 서비스’라는 영역인데, 구체적으로 영화와 방송, 통신의 세 가지 꼭지점으로 이루어진 부문으로 읽으시면 정확하겠습니다.

오 : 올해 초에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밝히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었는데요. 정부가 자발적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킨 것이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요? 그리고 미국이 스크린쿼터 축소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전 : 스크린쿼터 축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내 영화의 경쟁력이 있다, 스크린쿼터가 문화 다양성에 무슨 역할을 했느냐, 결국 스크린쿼터의 존재는 국내 영화자본과 일부 스타들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지적들이 있는데요,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미국이 왜 스크린쿼터 축소를 협상의 사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을까요? 단순히 영화 시장이 탐나서?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영화는 방송, 통신과 더불어 시청각 부문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꼭지점 중 하나입니다. 영화와 방송, 통신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라, 상호 밀접하게 연관된 한 몸이라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삼위일체'라는 건데요. 그래서 한 쪽이 무너지면, 그 효과는 바로 나머지 지점들로 전이됩니다. 미국은 FTA 협상이라는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겁니다. 미국은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원칙을 방송 부문에도 소위 ‘보편적’으로 적용하라고 요구할 게 틀림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스크린쿼터 축소는 시청각 부문의 보호라는 기대에, 문화적 예외라는 원칙에 매우 위험한 구멍을 내 버렸습니다. 미국 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청각이라는 안방에 한발이 아닌, 몇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로 그렇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를 마치 영화에만 한정시켜 논의를 끌어가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오 : 그러나 시청각·미디어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널리 이슈화된 것은 스크린쿼터 문제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한미 FTA 협상 대상에서 방송은 제외되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전 : 방송이 협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해괴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데요, 일반인들은 차치하고, 이른바 학계와 전문가, 심지어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사태의 핵심과 진행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무지한 상황입니다. 그와 같은 낙관론의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 정도의 이야기인데요, 첫째,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에서 방송을 요구한 적도 없고 또 상대국도 방송을 내놓은 적도 없다. 두 번째로, 우리 방송위원회와 정부도 방송만은 필사적으로 막을 각오다. 세 번째로, 미국은 사실 스크린쿼터 축소를 통해 이미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방송에 대해서 개방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이런 건데요. 한마디로 넌센스 코미디 같은 주장입니다. 대체 이런 이야기가 어떤 근거에 기초해, 누가 유포시키고 있는지 저희 공대위도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추적하고 있습니다. 방송위원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따지기 모호한 방식으로 낙관론을 흘리지 말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라고, 공대위의 질의서를 보낼 예정입니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오 : 방송도 당연히 협상 대상에 포함된다는 말씀이시죠?

전 : 매우 중요한 대목이니까 제가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좀 비판해 볼까 합니다. 미국이 FTA 협상에서 방송 부문의 개방을 요구한 적이 없다? 최근 <경향신문> 기사에 바로 방송위 ‘관계자’(무책임하게도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관계자'로 나옵니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봤는데요, 정말 그 무식한 용기에 오싹 소름이 끼칩니다. 제가 알기로 미국은 모든 FTA 협상에서 100% 방송의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 지상파는 포기하고 케이블이나 뉴미디어의 개방 소득을 얻어내거나, 혹은 방송을 양보하고 대신 통신 개방의 엄청난 실익을 챙기는 방식을 택합니다. 방송을 지상파로 한정시키거나, 방송과 통신을 따로 떼어놓고 말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논리가 방송위 같은데서 사적인 채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니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죠. 방송위는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해야 합니다. 저 같은 일개 학자가 말하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위나 정부가 방송은 필사적으로 막겠다는 것도 쉽게 믿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죠. 그러나 방송 개방을 막기 위해 어떠한 연구를 얼마나 했고, 어떠한 대응 논리와 전략을 개발했는지, 이를 정부 협상단에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해서 협상단의 입장으로 실재 반영되었는지, 바로 이런 게 문제입니다. 제가 알기로 방송위 내부에 FTA 담당자가 딱 1명 있는데, 과연 제대로 연구하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는 거죠. 공식 입장도 없이 사사로이 흘러나오는 말을 믿어 달라?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 : 그럼 시청각·미디어 분야에서의 주요 이슈, 혹은 미국의 주요 요구사항은 무엇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전 : 영화는 FTA 협상에 앞서 이미 개방의 문을 사실상 활짝 열어놓았으니까, 이제는 통신과 방송에 집중할 겁니다. 사실 통신 서비스 분야의 개방에 올인 하겠다는 것은 미 무역대표부가 여러 보고서를 통해 이미 공언한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의 49% 외국인/자본 소유 지분 제한 규정을 대폭 상향 조정하라는 건데요, 한 마디로 통신을 먹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통신 개방이 그것에 멈추지 않고, 방송으로 이어진다는 거죠. 방송융합 시대에 통신의 개방은 자동적으로 방송의 개방으로 이어집니다. 미 정부가 아직까지 방송 개방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미 무역대표부가 발표한 15개 협상 의제에 방송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마치 방송이 제외되었다고 낙관하는 것은 한마디로 매우 위험합니다. 미국이 방송과 같이 예민한 이야기를 미리 꺼내 논란을 자초할 리 만무하죠. 오히려 협상을 일단 진척시키는 도중에 비장의 카드로 꺼낼 것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일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미 재계의 동향을 잘 살펴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주 미 무역대표부가 개최한 공청회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를 비롯한 재계가 마침내 방송 개방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기 시작했습니다. 보고서를 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공식적인 발언을 내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제국의 시대 주인은 민족, 국가 혹은 정부가 아닌, 바로 자본이 아닌가요? FTA의 실체 추진 세력도 다국적 자본의 네트워크라고 보는 게 정확할 텐데, 바로 그 자본이 방송 개방을 요구했다는 것은 정말 시청각의 세 가지 꼭지점, 영화, 통신, 방송의 전면적 개방 요구가 이미 나왔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오 : 지난 3월 21일, 공대위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미국은 시청각·미디어 분야 개방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드러내면서 숨기는 일종의 이중 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던데요. 미국의 전략은 통신을 매개로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전 : 통신 같은 분야는 과감하게 드러내 말해도 통한다고 보는 거죠. 국내에서도 우리 공대위를 제외하고는 통신과 방송의 깊은 연관성을 제대로 주목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집단이 없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번에 새로 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청문회에서 통신 분야의 탈규제화를 더욱 서두르는 게 대세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한미 FTA 협상에서 사실상 통신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삼성 경제연구소 같은 데서도 똑같이 통신 분야의 탈규제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미국이 굳이 통신 개방 요구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반면 미국 정부는 방송과 같은 ‘예민한’ 포인트는 노골적으로 개방을 논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재계를 통해 간접 화법을 쓰는 건데요, 그래도 말씀드렸다시피 개방의 전략 자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3월21일 공대위가 개최한 토론회

오 : 그럼 방송 개방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쟁점은 무엇인가요? 방송의 소유 지분 문제나 프로그램 편성 정책, 광고 시장 개방 등과 관련하여 미국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전 : 방송과 관련해 미국 정부나 재계가 요구해 온, 그래서 한미 FTA 협상에서 카드로 들이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하는 내용은 대략 세 가지인데요. 우선 첫 번째로, 통신과 마찬가지로 방송사의 외국인 소유 지분 제한 비율을 철폐하거나 현저히 '자유화'시켜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런 요구는 예민한 지상파 방송보다는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 지상파 상업방송을 주 표적으로 할텐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외국 미디어 자본이 소유하는 방송사가 국내에 생겨나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영화에서와 같이 쿼터의 폐지 혹은 현저한 탈규제화를 요구할 겁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텔레비전도 자국의 문화/콘텐츠 보호를 위해서 여러 쿼터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쿼터가 이른바 상품의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시장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해 왔습니다. 만약 방송에서도 지역 콘텐츠(local contents) 쿼터가 무력화된다면, 안방에 외국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제약/규제 없이 들어올 것입니다. 요즘처럼 방송 산업이 위기인 상태에서,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값싼 외국 콘텐츠를 수입해 편성한다면, 최악의 경우 국내 제작 기반은 완전히 몰락하고 안방에서 우리는 외국 방송을 시청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죠. 단순히 양적인 측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자본/제국의 시각과 취향이 강력히 배인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안방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 바로 '문화 제국'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셋째로 미국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존재와 역할을 소위 시장경쟁의 원리에 위배된다면서 한미 FTA에서 시비할 게 틀림없습니다. 방송 광고를 정말 시장 논리에 맡기게 된다면 무한한 시청률 경쟁에 따른 상업화, 질 저하,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담론의 격하, 정말 상상하기에 끔찍한 상황이 그려집니다. 한미 FTA와 시청각 개방은 산업적 논리가 아닌, 민주주의 보호의 사회·정치적 가치, 문화다양성 유지의 문화적 의미에서 반드시 저지되어야 합니다.

오 : 시청각·미디어 시장이 개방되면 관련 분야의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겠습니까?

전 : 물론입니다. 공영방송이 위기에 처하고, 국내 제작산업의 근간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 상황에서 시청각·미디어 분야 노동자들의 삶이 안정적일 수 없죠. 고용 불안과 대량 실직, 그리고 비정규직의 심화가 필연적입니다. 정규직 기자나 피디(PD)가 누려왔던 중간계급, 소부르조아적 특권이 완전히 해체될 것입니다. 비정규직이 겪게 될 고통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이러한 점에서 이 분야의 제작자, 연기자, 작가 등이 제대로 현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알량한 전문가의 허위의식을 떨치고 노동자로서 새로이 주체 구성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과 타자의 삶을 동시에 보호하는 지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침묵과 무력함으로 일관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문화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쓰나미 앞에서 너무나 말도 안 되는 태도라고 할 수밖에 없죠.

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분야의 노동자들도 그렇고, 당사자격인 방송사, 언론사나 방송위원회도 너무 조용한 것 같습니다. 참 납득하기 힘든 상황인데요.

전 : 월드컵 축구, 야구에 대해서는 그렇게 난리를 치던 방송사들이 국가의 대사인 FTA에 대해 이렇게 냉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그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기로 무슨 약속이나 한 것 같은데요, 우리 공대위는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대위 차원에서 방송위원회에 공식 질의서를 낼 예정이고요, 냉담한 방송사들, 그리고 한미 FTA 대세론을 퍼뜨리기에 바쁜 수구신문들을 꼼꼼히 모니터링 해서 그 결과를 발표할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공영방송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금과 같은 불량한 공영방송을 무조건 지키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공영방송이 되도록 할 것이며, 이런 점을 내부 경영자와 노동자들도 분명히 인식했으면 합니다.

오 : 시청각·미디어 분야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가 있나요? 있다면 구체적인 협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요?

전 : 미국은 자신이 맺은 모든 FTA에서 사실상 시청각 분야의 개방 소득을 얻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아래 NAFTA)의 경우 캐나다와는 오랜 문화 정체성의 갈등 탓으로 문화상품을 제외시키기로 한 극히 드문 예외가 있습니다만, 멕시코에 대해서는 이런 예외 조항을 전혀 적용시키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의 경우 NAFTA 이후 영화가, 자체 제작산업이 사실상 붕괴된 것에 대해서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고요. 미국과의 협상에서 방송은 제외시키기로 했다는 싱가포르의 경우에도 그 대신 통신은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호주에서는 지상파 TV는 포기하는 대신 케이블, 위성 등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미국 정부가 전례없는 소득을 얻었다고 공식 발표했거든요?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상파 대신에 뉴미디어, 방송 대신에 통신을 개방하는 식이지, 시청각 자체를 미국이 FTA 협상에서 포기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시장 개방의 결과는 산업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결과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눈과 귀와 감각의 기관이 사실상 남에게 넘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청각 기관은 말 그대로 삶 즉 문화의 기관입니다. 인간이든, 사회든 영혼과 정신의 핵심 포인트, 주체 구성의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 : 시청각·미디어 분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및 협상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전 : 한 마디로 낙제점입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대체 왜 노무현 정권이 이렇게 무리하게 한미 FTA를 서두르는지 의아하고 궁금할 따름입니다. 국익에 필요하다는, 잘 하면 대박 성공이요 못하면 실패라는 식의 주장말고, 그 이상의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거죠. 시청각 미디어 분야에서도 태도는 매우 불량하고 불성실합니다. 새로 문광부 장관이 될 김명곤씨는 스크린쿼터 축소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고, 앞서 설명 드렸듯이 방송위는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 하나 없이 시중에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흘리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외교통상부 협상 책임자는 광고 분야의 미국 측 압력이 대단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책 없이, 개방을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공적인 약속도 없이, 그냥 무대책의 대책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 셈인데요. 방송위원회와 문광부, 정통부에게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겠냐고요. 없다면 개방하는 게 맞다는 혹은 불가피하다는 헛소리를 당장 집어치워야 합니다. 선전과 홍보 대신에, 서둘러 시민사회와 공개적이고 투명한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방송을, 시청각·미디어 분야를, 한미 FTA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동의한다면, 우리 공대위는 방송위원회나 문광부, 정통부, 외통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의지가 있습니다. 방송위원회와 정부는 선택해야 합니다. 다중의 의지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제국/자본의 질서에 순응할지.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정확하게 그 책임을 물을 겁니다.

오 :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공대위의 향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전 : 현재 20여개 단체가 공대위에 가입해 있습니다만, 그 외연을 더욱 넓혀 나갈 것입니다. 작가, 연기자들까지도 공대위로 끌어들이고, 투쟁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도 계속 접촉할 예정입니다. 공대위 내부에 정책위원회가 꾸려져 있는데, 외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대응 방향과 전략, 내용 등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토론회를 실시하고, 그래서 사회 여론/의제를 설정하고, 방송위 등을 감시/압박할 예정입니다. 제도권 매체에 대한 감시 모니터링 작업도 중요한 활동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만, 인터넷 기사/기고 등을 통해 대항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번 싸움은 부실한 정권의 일방주의에 정확하고 합리적인 지식, 판단력으로 맞서는 담론의 싸움입니다. 언론과 여론의 투쟁인 것이죠. 그러한 점에서 우리 시청각·미디어 공대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정부에서 유포하는 선전에 맞서 언론/소통의 채널 역할을 하는 건데요. 여러 공대위들과 적극 협조해, 공적영역이 핵심인 방송, 사회문화 그 자체인 시청각 미디어, 나아가 궁극적으로 제국/자본의 게임인 한미 FTA를 저지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 연대를 제안합니다.

오 :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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