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여기는
집단 지능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하여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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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2005년 12월호에는 집단 지능에 관한 글 ‘공유와 협업의 플랫폼 그리고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 실렸다. 이 글에서는 구글, 지식검색, 태그(Tag, 정보의 분류 방식, 주제어를 정해 꼬리표를 만들면 그 주제에 해당하는 자료가 동적으로 분류된다.) 등을 집단 지능의 모델로 거론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지능에 관해 이야기한다. 웹2.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협업 시스템에 기반한 집단 지능형 웹서비스에 관한 관심도 아울러 증폭하고 있다. 그러면 집단 지능형 웹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지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실체는 없는데 모두들 그것에 기대려고 한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내의 인터넷 환경, 대중의 사고방식과 성향에 적합한 개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 ‘집단최면’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 http://hochan.net

집단 지능이란 말은 ‘대화형 서비스’처럼 중독성이 강한 환각제다. 집단 지능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집단 지능의 한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 경계는 확장될 수 있다. 이것은 양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한계란 경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넘어설 수 없거나 아주 어려운 지점을 가리킨다.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보다는 경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일반명사가 된 인터넷 카페를 집단 지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떠한가. 대부분의 인터넷 동호회가 1년도 못가서 폐쇄되거나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와 지식이 운영진(소수)에게만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동호회는 집단 지능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다.

도구의 한계를 파악해야 경계를 확장할 수 있다

댓글 토론 같은 것은 어떠한가. 댓글은 태생적으로 토론 기능으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토론은 대립하는 두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장치가 필요한데 댓글 토론은 그러하지 못하다. 댓글 토론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분명한 내부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그 한계를 부정하고 장밋빛 가능성에만 매몰돼 있으면 그저 끝도 없이 넘치는 쓰레기 더미에 방향제를 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한 쓰레기장은 다름 아닌 포털 사이트 뉴스면의 댓글 게시판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개인 웹사이트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에서는 토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토론이 가능한 까닭은 중재자(웹사이트 운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댓글은 집단 지능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오남용하지 않으면 된다.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은 뜬금없으며, 원문을 보완하거나 교정하는 기능을 할 때에만 그것에 기여할 수 있다. 개인 웹사이트나 토론 게시판은 전문화할 때, 미분화할 때 오히려 거대한 집단 지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 지능의 한계는 우선 검증 시스템의 부재다. 그러면 우리는 한계를 정확히 알고 헛된 망상 - 가령 완결된(정확한) 지식을 기대하는 것 - 을 접어야 한다. 대신 그것을 오히려 활용해야 한다. 그것을 발판으로 다른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확장하면 된다. 절판되거나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의 내용이 온라인으로 제공된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작업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노력을 감안한다면 오프라인에서 재출간하는 것이 공공의 차원에서 더 유익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이것을 인쇄하여 읽으려면 또 다른 비용이 소모된다. 완결된 지식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기 보다는 완결된 지식으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메타적 기능에 충실한 것, 즉 기존 지식의 스캐닝, 지혜의 스캐닝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책 한권을 통째로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올리는 것보다는 책 백권의 요약 자료가 훨씬 유익하며 집단 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인터넷의 활용도 면에서도 부합한다는 말이다.

집단 지능의 두 과제, 지식의 스캐닝과 경험적 지식의 축적

최근에 이사를 준비하며 무수한 부동산 관련 웹사이트를 많은 시간 동안 이용한 다음,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매물을 확인하여 대조해본 결과, 내가 보았던 인터넷의 부동산 정보들은 거의 모두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신 지식 검색에 실린 관련 답변들에는 유용한 것이 꽤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집단 지능의 가능성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개인의 경험적 지식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경험적 지식이 쌓이는 블로그 같은 도구의 내용들이 유사한 경험 주제를 지니며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는 태그는 경험적 지식이 집단 지능으로 변모하는 초기 단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로써, 집단 지능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이끌어냈다. 기존 정보의 메타 검색, 즉 스캐닝 기능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경험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

지식의 피라미드는 네 단계로 구성된다. 무수한 데이터들이 사막의 모래라면 그 중에서 선별된 데이터들은 정보 이전 단계인 유용한 데이터로서 하나의 벽돌이 되어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놓인다. 그 위에 정보가 쌓이고, 그 위에 지식이 놓인다.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는 지혜가 자리잡는다. 집단 지능형 서비스의 하나인 지식 검색도 넓게 조망하면 이러한 지식 피라미드의 형태를 띨 것이다. 집단 지능으로서의 웹이 단순한 지식 스캐닝에 그치지 않고 지혜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들의 경험적 지식 때문일 것이다.

집단 지능의 궁극적 지향점은 지혜를 지키는 것

철학자 화이트헤드는《관념의 모험》에서, 사회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본성을 본능, 지성, 지혜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본능이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원초적인 경험적 습관이라면 지성은 그것들에서 유래하는 관념들을 논리적인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지적 활동이다. 본능과 지성 사이의 판단자, 즉 조정자가 지혜인데 바로 결단을 가리킨다.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전체에서 일부분만을 채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혜는 ‘지적인 체계와 그 체계로부터 생략된 것들의 중요성을 항상 대결하도록 함으로써 보다 깊은 이해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본능-지성-지혜가 서로 융합하고, 그렇게 되면 전체가 그 부분에서 출현하며, 부분들은 전체 속에서 출현한다. ‘지성의 활동은 지혜를 희생함으로써 꽃을 피우는 경향이 있다.’ 집단 지능의 궁극적 지향점은 지혜를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본질이 무엇인지 -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 항상 묻고 대화하고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단 지능의 최면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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