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과학에세이
다윗과 골리앗

이성우 / 공공연맹 사무처장   kamb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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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에 가면 한국기술센터라는 번듯한 고층건물이 있다. 산업자원부가 거두어들인 기술료 중에서 500여억원을 사용해서 구입한 것이다. 산자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의 조합원들이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탈법적으로 지출했다고 지적했고, 이 사실은 2002년 봄에 어느 신문에 실렸다. 이로 말미암아 산자부 장관은 예산감시시민행동으로부터 ‘밑빠진 독상’을 받았다.

올해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예산은 8조 9천억원 규모이고, 그 절반가량을 과학기술부(2조 1700억원, 24%)와 산자부(2조원, 22%)가 집행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산기평)은 연구개발예산이 본래의 목적대로 쓰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산자부 산하 연구관리 전문기관이다. 여기에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산업기술평가원지부(산기평지부)가 있다. 2002년 3월에 기술료의 부당한 전용사실이 보도된 후, 산자부는 산기평의 사용자에게 내부 고발자들을 찾아내어 해고하도록 종용하였다.

당시 산기평의 단체협약은 사용자가 임의로 조합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산자부의 압박은 무위로 돌아가는 듯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산자부는 이성을 잃었다. 2003년에 산자부와 산기평은 근거도 없이 조합원들을 대기발령하고, 직위해제하고, 급기야 정리해고했다. 이러한 일들은 단체협약을 크게 개악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진행되었고, 노사관계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2004년 한해 사용자들이 자행한 대기발령, 직위해제, 정리해고는 (지방,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 모두 부당하다고 판결이 났다.

산자부와 사용자는 집요했다. 정부와의 극한 대립관계를 불안해하는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여 대거 노조를 이탈하게 하고, 2004년 9월에는 탈퇴한 조합원들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106명의 조합원이 졸지에 25명으로 줄어든 산기평지부는 쫓겨나서 근처 주택가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다. 산기평지부는 투쟁을 계속하는 한편, 어용노조가 불법이라는 소송에 돌입했다. 2005년 4월 21일 서울지방법원과 2006년 4월 14일 서울고등법원은 똑같이 어용노조 설립이 불법이라고 판결하였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두루 거치면서 수많은 법적 다툼이 있었지만 노조가 100% 승소하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반면, 노조 탄압을 저지른 산기평 사용자들은 최근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 사이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자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고, 산기평의 4년여의 파행운영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으며,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탄압은 이루 열거할 수가 없다. 사용자는 합법적인 산기평지부를 외면하고 어용노조만 인정하고 있다. 파행적인 노사관계를 바로잡고 기관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산기평지부는 지난 2월 7일부터 두 달이 훨씬 넘도록 전면파업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국가과학기술정책은 공공적 연구의 결과들을 재벌의 사적소유로 귀속시키는 길로 달려왔다. 산기평지부의 투쟁은 민주노조를 지키는 투쟁이며, 거대 자본에 맞서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지키는 투쟁이다. 다윗과 골리앗이 따로 있을까, 25명 동지들의 승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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