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사이방가르드
뉴욕감시카메라연기단 : 감시 권력 앞에서 벌이는 시원한 부조리극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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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유비퀴터스' 논의가 한창 바람이다. 정부의 정보화 정책도 '유-(U)'로 시작하지 않으면 신선도가 떨어질 정도다. 어느 곳에서든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연결되고 소통하는 디지털의 '멋진 신세계'의 모습을 어느 누구도 반대할 리 없다. 그러나 공간과 권력의 재생산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직시하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디지털의 비전이 그리 달갑지 않다. 소위 '유-'로 얻어지는 '기동성'(mobility)이 공간을 통해 실현될 때는 권력의 통제 욕망이 깊숙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던 권력의 폭력이 비가시적인 디지털 공간의 영역으로 녹아들면, 저항의 개입이 이뤄지기가 도통 힘들어진다. 현대의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시선보단, 곤봉에 얻어맞고 군홧발에 차일 시절에, 분노가 사회적 저항의 비등점에 이르기가 훨씬 빨랐다. 현실의 유무선 장비들, 예컨대, 인공위성 위치추적 시스템(GPS), 전파식별 (RFID) 칩들,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s), 핸드폰 위치추적장비, 유/무선인터넷 등은 현대 권력의 폭력성을 숨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이들 디지털 장비들은 일종의 탈중심화된 권력 촉수가 되고, 일단 '유-'로 연결되어 공간 기동성을 부여받게 되면, 나머지 몫은 이들 촉수들을 관리하는 중앙 상황 조정실에 떨어진다.

어떻게 하면 이 감시권력의 촉수들의 가동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을까? 이는 일상화된 감시 속에 사는 현대인의 고민이자 권력의 수족을 묶는 저항의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권력 감시가 제대로 힘쓰려면, 권력의 촉수들을 시민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아예 감지 못하도록 비가시적 영역에 숨기는 방법이 있다. 거꾸로 이렇듯 일상화되고 숨어있는 감시권력을 뒤집으려면, 권력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방법과 숨어있는 권력을 반대로 드러내고 조롱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이미 '역기술국(BIT)‘에 의한 사례들(<네트워커> 26호)에서 살펴본 적이 있어서, 이번 호에선 후자의 사례를 볼까 한다.
'뉴욕 감시카메라 연기단'(New York Surveillance Camera Players, 이하 '연기단')은 뉴욕이란 거대 도시에서 작동하는 감시 카메라들 앞에서 소리 없는 연극 시연을 펼친다. 이들은 96년 맨하턴 지하철역에서 감시카메라 앞에서 알프레드 자리의 <위비왕 Ubu Roi>을 시연했다. 자리가 부르주와의 퇴폐와 극악한 일면을 당시 부조리극으로 폭로했다면, 연기단은 폐쇄회로 앞에서 감시 권력의 통제 편집증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비꼰다. 이들 연극은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대신, 만화의 말풍선처럼 피켓을 사용해 상황의 극적 집중을 강조한다. 이들의 관객은 모니터를 관찰하는 익명의 권력과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이다. 폐쇄 회로의 촉수를 통해 몰래 행인들을 관찰하던 능동의 감시 권력은 오히려 모니터 앞에 앉은 채 감시단이 시연하는 무언극의 관객이 된다. 그야말로 폐쇄회로 속 권력은 자신을 모독하는 무언극을 봐야하는 고통에 처한다. 한편 지나가던 행인들은 늘상 보아왔던 폐쇄 회로가 늘상 게 있던 것이 아닌, 권력의 촉수임을 점차 부조리극을 통해 깨닫는다.
연기단의 활동은 게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웹사이트로 들어가면 맨하턴 지역의 거의 모든 교통, 공공, 사적 폐쇄회로의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해놓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재미난 것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자신이 발견한 맨하턴의 폐쇄회로 텔레비전 위치의 주소를 각자 자발적으로 기입하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들의 참여에 의해 폐쇄 회로 티브이 위치는 지도위에 매번 갱신되고 추가되며, 권력의 촉수는 누구나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노출된다. 숨어있는 촉수들의 비가시성이 지도상에 좌표로 찍힘으로써 그 은밀한 장비들은 시민들이 주의해야할 권력의 힘없는 지뢰밭으로 변한다.

연기단의 활동 중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제 폐쇄회로 티브이의 한 곳에 고착된 비이동성이 발 달린 기동성으로 뒤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기단이 보는 기동성의 배후에는 핸드폰의 영상 기능과 추적 기능의 향상된 기술 현실이 존재한다. 표적 대상을 카메라로 찍거나 전화를 걸어 상대의 위치를 찾고 확인하는 과정은 이제 찰나의 순간에 공간을 타고 이뤄진다. 사회의 '불순물'을 쉽게 제거하는 방법엔 소리없는 '유-' 세상 이상 없다. 삼성의 노동감시 폐쇄회로 카메라가 공장 밖에서 설치고 돌아다니는데, 핸드폰의 '친구찾기' 서비스가 그 날개를 달아주었듯, 현실의 감시 카메라는 이제 더 이상 고착된 촉수가 아니라 움직이는 권력의 촉수와 같다고 본다. 연기단의 활동은 이렇듯 감시 권력 앞에서의 시연을 통해 권력이 가진 통제 편집증을 조롱하고, 일반 시민들과 함께 숨은 권력의 촉수들의 위치를 찾아내 그 기능을 불구화하고, 전자 감시 권력의 새로운 기동성의 위협 요소들을 착목하는데 모아진다.

연기단은 일부 언론이 그들에게 쏟아붓는 피해망상에다 편집증자들의 모임이라는 지적에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응한다. "뉴욕시 전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들이 편집증 환자요?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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