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칼럼
네트워크에서의 공(公)과 사(私)

전응휘 / 평화마을 피스넷 사무처장   chun@peace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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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공(公)과 사(私)가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인터넷 세계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인터넷 상에서의 바이러스 유포로 인한 인터넷 대란 사건이 있었을 때에 많은 이들은 국가의 기간네트워크가 마비가 될 정도로 우리 통신정책이 허술한가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실상 인터넷망의 주축은 전혀 국가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사설망들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미 거의 모든 경제, 사회, 문화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망에 대해서 공공정책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사적 네트워크의 총합에서 공공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공공정책적 개입의 필요성과 정당성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 정보통신 분야의 핵심적인 이슈인 네트워크 중립성(Net Neutrality)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바로 인터넷에 있어서 과연 공공성을 어떻게 확립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원래 인터넷을 처음 설계한 사람들은 인터넷의 기술적 구조(architecture)를 발신지 주소와 종착지 주소, 그리고 데이터 패킷과 서비스 포트번호, 네 가지로 단순화 시켰다. 이렇게 단순화 시킨 이유는 수많은 종류의 사설망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전송로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덜고 실제 서비스의 대부분은 망의 종단(end to end service)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기술혁신과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비즈니스가 가능했던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 같은 인터넷의 기술적 구조의 단순함, 즉 망의 부담을 덜고 종단 서비스 개발의 개방성을 열어놓았다는 기술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망이 데이터패킷을 신경쓰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최근에 네트워크 중립성의 문제가 대두하는 이유는 망사업자들이 점차로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데이터패킷을 통제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망사업자들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데이터패킷들을 일종의 무임승차자로 보게 되었고, 망의 혼잡도가 심해짐에 따라 서비스 질의 향상을 위해 특정서비스에 해당하는 패킷에 우선통과순위를 부여하는 소위 서비스품질(Quality of Service)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고, 이 기술은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데이터패킷을 차별적으로 취급하게 되므로 이제까지 인터넷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망의 중립성을 해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자체가 사설망이고 네트워크의 운영자가 통과하는 데이터패킷을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할 때 과연 망의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한 OECD의 연구보고서는 망중립성의 문제를 선택가능한 공공정책적 수단으로 보고 있으나 공공정책의 개입 정당성은 어디까지나 인터넷접속서비스 시장의 경쟁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망중립성에 대한 의무부과는 결과적으로 망의 고도화에의 유인을 없애는 것이므로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망의 중립성이 만약 깨어진다면 인터넷의 수많은 다양한 서비스 - 검색, 포털, 이메일, 동화상, 인터넷전화 등등 모든 서비스들은 네트워크 사업자에 의해 서비스 제한을 받게 되며, 이것은 곧 인터넷 서비스에의 전반적인 투자 위축을 결과하게 될 것이다. 네트워크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인터넷의 질서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중임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실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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