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만화뒤집기
그야말로 살아가는 얘기, 어렵고도 정다운 !
「건달농부의 집짓는 이야기①」 (장진영 글․그림/ 샘터)

신성식 /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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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농부의 집짓는 이야기 표지

한미FTA로 인해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아니, 너무 조용하다. 내게는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인데 길거리에 나가 봐도 정보의 바다에 들어가 봐도 잠잠하기만 하다. 오히려 FTA만이 살길이라는 둥, 안하면 어쩔거냐는 둥 거의 협박조다. 첨엔 FTA를 하면 일자리가 10만개 늘어난다느니 GDP가 어쩌느니 희망 일색으로 찬양하더니 그 근거가 미약하니까 이젠 겁주기로 바꿨나보다. 이러한 정부의 행태는 일관성도 없이 그야말로 ‘협정했다’라는 결과만을 바라며 미친 듯이 내달리는 꼴통(나쁜 의미의)들 같아 불신감, 불안감만 더하게 한다. 그런데 왜 ‘이놈의 세상’은 이렇게 내달리는 자들이 져야할 책임을 가만히 있는(반대하는) 내가 지게 만드는 가 참으로 의문이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돈이 주인인 세상이라는 탓도 있을게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래보질 않아서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상당한 부가 있다면 적당한 권력까지 행사하며 살 수도 있을 것 같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놈의 세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도 하고, 아니면... 아니면? 이 작품에서처럼 돈을 안 쓰면서 사는 법도 있다. 돈벌기 싫은 주인공은 결국 돈을 안 쓰는 방법을 통해서 탈출구를 찾는다. 그 점에서 통쾌하기도 하고 단순 명료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건달농부의 집짓는 이야기’에는 그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991년 <주간 노동자 신문>에 장편극화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를 연재했던 작가 장진영은 이제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강화도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아니지 ‘이제는’이 아니라 벌써 12년째(방금 전화로 확인함)다. 내가 장진영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미 강화도에 정착한 이후다. 나는 그냥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는 줄 알았다. ‘삽 한 자루 달랑 들고(2000년)’를 보고도 그런 생각에 큰 변함이 없었다. 그냥 농사짓는다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는 정도. 그런데 올해 초에 ‘건달농부의 집짓는 이야기’를 보고서야 ‘아~ 그렇구나’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야기인즉슨 그저 전원생활이나 하려고 강화도에 간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저 전원생활의 낭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무지한 편견이었던지 새삼 부끄러워졌다. 사실 아는 사람들끼리는 강화도의 장진영하면 여러 전설(?)이 있다. 주로 술에 관련된 건데, 예를 들면 강화도에 가면 절대 만나지 말라거나 마셨는데 며칠을 연짝으로 마셨네... 등등이다. 그러다보니 재미난 기억들로만 가득하여 이면의 어려움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이 거의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표현된 것이 ‘삽 한 자루 달랑 들고’라면 ‘건달농부의 집짓는 이야기’는 좀더 많은 부분 창작이 되고 다듬어져서 이야기 구조가 훨씬 간명하다.

1장 「희한한 세상」에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세상살이가 읊어진다. 노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게 아니라 일부러 런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려야하는 사람들, 성인병에 시달리지만 오늘도 승진을 위해(살아남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일상들은 사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래서 애써 외면한 실상들이다. 2장「빈집」에서는 그래서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의 빈집에 자리 잡고, 3장 「돈을 벌기 싫은 남자」에선 30만원을 번(?) 얘기가 나오고 4장에서는 집을 지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나온다. 이러한 과정이 재미난 것은 주인공의 이야기만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가족을 맞이하는 빈집투성이의 시골 주민들의 얘기가 잘 섞여있기 때문이다. 꼬고 또 꼬다가 결국엔 시어머니가 친정엄마가 되고 엄마가 장모가 되는 상상력은 나오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실랑이가 펼쳐진다.

등장인물들도 아주 개성적이다. 소개를 한 번 보자.
주인공 왕뱁새, 그는 돈을 벌기 싫어한다. 또 돈 없이 집을 지으려 한다.
황도사, 그는 돈을 벌 줄 모른다. 그러나 (정말) 궁리가 많다.
이토박, 토박이 농부로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박애술, 돈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늘 술을 먹는다.

이렇게 개성있는 인물들이 부딪히면서 얘기들을 만들어 가는데 내가 보기엔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생생하다. 실화를 그대로 옮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에 단 1cm 도 떨어져 살지 못하면서 공허한 상상만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깊게 뿌리박혀 있는 현실을 재미나게 가공한다는 얘기이다. 현실에 기반한 상상력이야말로 살아있는 상상력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실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주인공이 집짓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1권이니까(제발 2권 좀 빨리 작업해 주세요!).

사실 요즘에 들어 장진영 작가를 볼일이 많아졌다. 전에는 일년에 한두 번 정도였는데 요즘은 거의 매주 얼굴을 맞댄다.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일 때문이다. 나는 사무국장, 장진영 작가는 회장님이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갖고 있는 순수한 생각이 나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대충 현실에 적응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살아 보려는 내게는 무엇이든 본래의 이름에 걸맞게 그 일이 잘 굴러가는 게 당연한 분은 당연히 부담스럽다. 하다못해 회장님의 ‘님’자 조차 거북해하는 ‘진영이 형’을 모시려니 더 그럴 수밖에.

건잘농부의 집짓는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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