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사이방가르드
미 언더그라운드 시사 만평의 기수, 앤디 싱어

이광석 / 네트워커 편집위원   suk_l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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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싱어(Andy Singer)의 만평을 접한 것은 아주 최근 일이다. 평소에 만화책을 즐겨 보지만, 만평은 그리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과거 보수 꼴통들이 만들어내는 신문들의 어처구니없는 만평들에 질려버린 탓도 있다. 그러다 재밌는 책을 찾아냈다. 테드 랄(Ted Rall)의 <태도 Attitude> 첫 번째 시리즈인데, 이 책은 전복적인 정치 성향을 지닌 미국 내 언더그라운드 화백들을 꼽아 소개하고 있다. 톰 투머로우(Tom Tomorrow) 등 대중적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었지만, 유난히 시선을 잡아끈 것은 싱어란 작가였다. 이제 국내 정치 만평의 수준과 시각에서 본다면, 한겨레의 박재동과 장봉군, 미디어오늘의 이용호, 내일신문의 김경수 화백 등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미국 작가 싱어에겐 뭔가 세계에 대한 실존적 자의식과 그만의 독특한 다른 질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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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이 묶어 펴낸 싱어의 작품집, <출구는 없다 No Exit>는 누구보다 절제된 한 컷짜리 만평들로 꾸며져 있다. 그가 지닌 장점은 크게 셋이다. 주제의 보편성, 최소 형식, 그리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주제의 보편성이라 함은 대개 그의 환경친화적 사고, 반상업주의, 그리고 보수 우익에 대한 냉소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영어권 세계의 독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하고 유대를 갖게 만드는 주제들이다. 형식의 간결성은 그의 명료한 상황설명 글과 그림 전개에서 확연해진다. 글은 절제되고, 그림의 세세함은 맥락이 필요한 정도까지다. 글이 어지럽고 하고 싶은 얘기를 꾸역꾸역 잡아넣으면, 독자의 시선은 멀어진다. 싱어의 능력은 비록 간단치 않지만 단순한 글과 그림에 살아있는 현실의 질감을 불어넣는다. 형식의 단순함이 오히려 그가 보여주는 진실성의 값을 상승시킨다. 그 사회와 정치의 맥락이 어떤 이에게 먼 풍경이라 하더라도, 싱어의 그 자체 한 컷의 만평에선 논리적 구조와 소구력이 충분히 구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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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싱어는 풍자와 유머를 잘 배합하는 작가다. 권력에 대한 냉소가 어설프면 작가의 자조나 빈정거림에 그치거나 독자의 헛웃음을 유발하기 십상이나, 제대로 그린 만평은 권력을 심히 불편하게 하거나 읽는 이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싱어는 그런 생생한 유머의 힘이 있다. 만평가로서 그의 색다른 매력은 정치와 문화의 경계에 선 작업들이다. 주류 대중 매체가 아닌 비주류 지역 정치, 문화 잡지에 기고한 경력이 그를 언더그라운드 시사 만평가로 평가하는 첫째 이유일 게다. 그가 지닌 소재의 다양성 또한 기존 정치 만평의 경계를 넘어선다. 예컨대 환경주의적 시각은 기술 문명에 대한 회의, 지구 온난화, 유전자 변형 생물, 첨단 기술에 의한 인간 소외, 자동차 공해 등 일상 문화의 부정적 토픽들을 통해 드러난다. 일면 그는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야기된 이라크전의 비인간성, 전쟁의 명분을 쌓는 대국민 선전전, 뉴욕 테러 이후의 인권 침해 등을 신랄하게 비틀고 조롱하면서도, 일상의 결에서 감지되는 보통 미국 시민들의 문화적 소외와 왜곡된 정신적 공황 상태를 꽤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쇄 매체의 증가하는 숫자와, 동질화하나 일견 파편화된 수많은 구독자수를 고려하면, 미국 내 소위 이름난 정치 만평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음은 짐작하고 남을 만하다. 싱어는 그와 같은 스타 만평가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아직은 그의 처지가 조촐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파 정론 잡지인 <Z 메거진>과 <뉴요커> 등을 통해 서서히 그의 만평들을 알리고 있다. 싱어는 상업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권력의 메커니즘과 모순의 골을 정확히 드러내는데 앞서 있다. 한 컷의 만평에서 사태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데는 절대적 시간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피안을 넘어서는 내공이 필요하다. 싱어의 표현은 단순하고 절제하나, 맥락을 정확히 짚어가며 제한된 컷의 공간 내에 현대 권력의 관계와 고리들을 적절히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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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의 정치 만평은 그도 지적한 바이지만, 사르트르와 까뮈의 실존주의에 기초한다. 산 아래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의 끊임없는 반복에서처럼, 현대 권력 체제의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인간의 반항이 얼마나 허망함을 알면서도, 싱어는 그 반복된 허망을 견디고 이에 저항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에서 특히 까뮈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신이 살기를 택한다면, 모든 전력을 다해 생명을 축복하고 죽음과 싸워야 한다. 나는 살기를 택했고, 그래서 문화와 환경의 자살 행위를 반대한다." 결국 사르트르의 희곡 제목 <출구는 없다>가 싱어의 최근 작품 제목으로 쓰인 연유에는 그 자신이 형상화한 절망의 질곡들에서 희망과 저항을 끌어내려는 자기부정의 실존주의적 몸부림이 깔려있다.
그의 소개글과 작품들
Singer, Andy (2001) CARToons. Car Busters.
Rall, Ted (Ed.), (2002). Attitude: The New Subversive Political Cartoonists. New York: NBM Publishing.
Rall, Ted (Ed.), (2004). Andy Singer: "No Exit." New York: NBM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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