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4호 학교이야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김현식 / 포항 대동중학교 교사   yonorang@eduhope.net
조회수: 6216 / 추천: 60
어느 홈페이지마다 ‘자유게시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학교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자유’란 누구나 편하게 자기 생각을 펴는 공간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원래 '자유게시판'은 'free board'를 번역한 말로 '자유'라기보다 '공짜'나 '무료'게시판이 맞다.

모든 존재에 의미가 있듯이, 이렇게 해서 생긴 '자유게시판'을 믿고 학생들은 순진하게 그야말로 자유롭게 글을 올린다. 학교 급식 시설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머리 자유'를 요구하는 상당히 정치적인 글을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올린다.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그동안 필명으로 적을 수 있던 자유게시판이 바로 실명제로 전환된 것이다. 게다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 덧글을 쓸 수 없도록 바꾸었으며, 게시물 삭제 권한을 부장 교사들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여 사실상 '자유게시판'이 아닌 지극히 통제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모두 드러낸 상태의 직언만 하도록 조치하였다.
대부분의 학교는 홈페이지를 비롯한 정보통신 관련 규정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관리의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만들고 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부모 아이디는 학생 아이디와 연동시키고 학부모가 글을 쓰면 학생 이름이 나오도록 한 곳도 있다.
학생들은 드디어 '자유'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학생부에 불려가거나, 담임을 통하여 '교육'을 받은 후에 조용히 공부만 열심히 하게 된다. 군대에는 '소원 수리'라는 게 있다. 병사들이 고충을 솔직히 말하면 해결해 준다는 것인데, 이것이 제대로 반영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학교를 구성하는 학생과 학부모, 심지어 교사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조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교조에서도 끊임없이 필명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조합원에 대해 실명제를 실시하자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집행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개인 의사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는 것보다 조직이 조용하고 안정되어 있기를 바란다.
'학부모 앞에 무릎 꿇은 여교사' 문제로 시끄럽다. 교권 침해 논란과 별개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할 방법이 없기에 생긴 구조적인 문제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선 폭력적 표현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유게시판'은 사랑채와 같다. 나그네, 친구, 과객, 손님, 불청객, 거지, 장사꾼이 늘 찾아오는 공간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학교의 구성원이기에 사랑채가 아니라 '안채'에 주인으로서 들어가서 얼굴을 맞대고 활발한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안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랑채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한 '아이'들은 오늘날 길거리를 배회한다. 성취보다 체념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돌들이 소리 지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선 시대 신문고와 같이 하소연을 들어주며, 사랑방에서 손님을 맞이하여 차를 나누며 서로 소통했던 정신이 지금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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