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5호 뜨거운감자
에이즈는 특별하지 않지만, 에이즈 감염인은 특별하다.
에이즈 예방법 개정에 필요한 인권 감수성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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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서 준비해 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이 오는 9월에 열리는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질병관리본부가 1년 동안의 연구 작업을 통해 만든 이번 개정안은 현재 입법예고가 마무리된 상태이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감염인들의 참여가 배재되었다는 점, 또한 개정안의 내용이 여전히 감염인들의 인권보호보다는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에 지난 4월, 인권단체 연석회의에서는 ‘HIV/AIDS 감염인(*) 인권’을 2006년 반(反)차별 행동과제로 정하고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을 조직했다.

공포로 점철된, 에이즈를 향한 편견

이번 공동행동은 한국 사회에서 HIV/AIDS 감염인들의 인권문제를 공론화하는 최초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감염인이 확인된 지 21년이 지났음에도, 그들의 인권 문제는 사회운동진영 안에서도 제대로 공유된 적이 없다. 또한 감염인들 스스로도 현행 에이즈 정책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채,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는 HIV/AIDS와 그 감염인을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1987년에 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맥락 역시, 그러한 배경을 갖고 있다. 물론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면서 격리제도와 같은 상식을 벗어난 조항들이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에이즈를 둘러싼 편견을 깨고, 감염인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이번 개정안이 비판을 받는 것도 정부가 여전히 그런 상식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방을 위해 실명보고가 반드시 필요한가?

에이즈 예방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감염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모든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개정안 제5조의 익명검사 조항은 피검사자가 익명을 요구할 경우 익명으로 검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사결과 감염 사실이 확인되어 의사 또는 보건소장이 보건복지부에 알릴 때, 익명 보고에 대한 규정은 없다.(개정안 제5조 제1항, 제4항) 현행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유추해보면, 보건복지부령을 근거로 하여 감염인에 대한 실명 신고와 보고체계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에이즈 예방이라는 목적을 위해 반드시 실명보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역학조사와 감염인 지원을 위해 감염인들의 신상정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성별과 연령, 추정 감염 경로 등의 자료만으로도 질병관리는 가능하다. 또한 진료비 지원을 위해 꼭 실명 보고를 해야 할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로 향하는 수많은 보고 체계에서 감염인들의 실명을 비롯해 불필요하게 많은 정보들이 집적되고, 그 과정 속에서 각 지역 단체장과 보건소 직원 등에게까지 감염인들의 정보가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실명 보고 체계는 치료과정에서 감염인들의 자발성을 약화시켜 그들을 오히려 공중보건체계 밖으로 내쫓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진료파일을 의사만 볼 수 있음에도, 병원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열람을 해서 병원 가기가 꺼려진다는 감염인도 있다.

병력정보는 비밀누설금지의무조항을 둘 정도로 그 보호의 중요성이 크다. 특히 HIV/AIDS 감염인의 경우 편견과 차별로 인한 인권침해가 극심한 집단인 만큼 익명 보고와 보고 단계의 최소화는 더욱 절실하다. 때문에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은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익명관리를 권고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전염병에 대해 ‘성명, 연령, 설명 기타 후생노동성령이 정하는 사항’을, 에이즈를 포함한 일부 전염병에 대해서는 ‘연령, 성별, 기타 후생노동성령이 정하는 사항’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실명 정보가 가져올 수 있는 인권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감염인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인가?

이번 개정안에서 실명 보고 체계 유지와 함께 우려되는 또 다른 부분은 제19조의 ‘전파매개행위 금지의무’ 조항이다. 전파매개행위 금지의무란,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성행위나 헌혈 등을 했으나 전염되지 않았을 경우, 또는 전염의 가능성을 미리 알렸을 경우에도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전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감염인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감염인들이 HIV 전파의 온상이라는 편견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환자 단체와 시민 단체들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행위’나 ‘헌혈’ 등은 감염인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통해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설령 그러한 행위를 통해 타인에게 감염이 됐더라도 형법을 통해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삭제되어야 할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개정을 넘어 폐지로!

지금까지의 에이즈 예방법은 바이러스가 아닌 감염인을 감시‧통제 한다는 점에서 그 반(反)인권성이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또한 정책결정 과정에서 감염인들의 참여도 늘 배제되었다. 때문에 이번 개정안에서는 에이즈 예방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감염인의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재의 예방법을 폐지하고, 감염인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다룬 새로운 법 제정의 검토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공의약센터의 활동가 권미란 씨는 “현재의 에이즈 예방법과 보건복지부에서 내놓은 이번 개정안은 에이즈가 개인의 비도덕적, 그릇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고방식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는 사회구조적인 질병이다. 때문에 에이즈 예방법은 개정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폐지해야 마땅한 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2일 첫 모임을 가진 공동행동은 이를 위해 대(對)시민 캠페인과 국회압박투쟁 등을 전개할 예정이다. 모처럼 계획된 이번 공동행동이 아무쪼록 HIV/AIDS 감염인을 둘러싼 ‘특별한 은유’들을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HIV와 AIDS 구분 :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라 불리며 AIDS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즉 ‘후천성 면역 결핍증’은 HIV에 의해 감염되어 나타나는 질환을 칭한다.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AIDS가 바로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10년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다. 때문에 'HIV 보균자'와 'AIDS 환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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