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5호 여기는
스캐닝에 길들여진 인터넷 사용자의 글읽기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조회수: 6853 / 추천: 67
텍스트 읽기에는 정독과 통독이 있다. 상황에 따라 꼼꼼하게 읽는 것도 필요하고 대강 훑어보고 지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인터넷 텍스트는 정독에는 부적합한 구조를 띠고 있다. 모니터를 통해 텍스트를 꼼꼼히 읽는 것은 고된 노동이기 때문에 정독이 필요한 글임에도 대충 스캐닝만 하고 지나가기 쉽다.

주로 RSS(웹사이트 갱신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든 규약으로 해당 웹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도 최신 정보를 읽을 수 있다.) 구독기를 통해 블로그나 뉴스를 읽다 보니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웬만한 글들은 제목만 보고 지나친다는 점이다. 내용까지 꼼꼼하게 읽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내가 이용하는 구독기는 새 글 목록을 200개까지 표시하는데 구독 목록 중 몇 개의 언론 매체는 거의 늘 200을 표시하고 있다. 제목조차 다 못 읽는 경우가 태반이다. 검색을 하다가 괜찮은 웹사이트를 발견하면, 그리고 만일 그 웹사이트에서 RSS를 제공하면 주저 없이 구독 목록에 추가한다. 반면에 기존의 목록에서 특정 사이트 주소를 삭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연스럽게 구독 목록은 점점 늘어난다. 물론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잦아진다. 정보의 홍수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 물량의 부담 속에서 정작 읽어야 할 것도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즐겨찾기로 저장해둔 웹사이트를 다시 방문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나중에 보려고 퍼 온 문서를 다시 보게 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정보들이 계속 밀려들어오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고 김형곤 씨는 예전에 어느 토크쇼에 출연하여 이렇게 말했다. “신문은 인터넷으로 보지 말고 종이로 읽어라. 인터넷으로 보면 제목만 보고 클릭하지 않느냐.” 그는 스캐닝에 그치는 글읽기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 정보의 스캐닝 습관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터넷 환경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드는 측면이 많다.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고 또 그것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대충 읽으면, 미숙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뜻과 정반대로 이해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글읽기 태도 중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단장취의(斷章取義)다. 원문의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일부분만 끊어서 뜻을 취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뚝 잘린 문구나 문장은 원뜻과 완전히 따로 논다. 이것은 원문 작성자에게도 그것을 읽게 되는 사람에게도 비극이다. 우리가 흔히 ‘낚시질’이라고 표현하는 인터넷에서의 부풀리기 수법은 인터넷 정보의 스캐닝 습관이 불러오는 허점을 파고든다. 대충 읽는다는 것은 반대로 솔깃하고 자극적인 문구에만 눈길을 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글읽기는 왜 이런 경향을 띨까. 일단 읽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포털, 인터넷 신문, 각종 웹사이트를 통해 엄청난 양의 뉴스와 각종 정보들이 생산되고 또 소비된다. 뉴스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도 뉴스 경쟁 속에 어엿한 속보 기사로 제공되고,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이 채 소비되기도 전에 그보다 더 많은 정보들이 화면을 뒤덮는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자극적인 뉴스만 살아남는다. 정보의 오락화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뜬소문도 거침없이 뉴스로 탈바꿈한다. 뜬소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뉴스와 정보의 소비 주기가 단축되면서 독자들도 지나간 뉴스의 과오 따위는 금세 잊기 때문이다. 뉴스 제공자의 질도 뉴스 소비자의 질도 동반 추락한다. 정보 제공자의 질적 저하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없다. 늘 소비자(독자) 탓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원하니까 공급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먼저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 대한 질적 저하 문제를 개선하면 될 것이다.

요즘 인터넷 사용자들은 대개 독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하다. 글쓰는 태도를 바꾸면 글읽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 내가 느낀 건 대강 이런 것이니, 너도 대충 그렇게 알아먹어라 하는 태도는 글쓰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잘못이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아예 쓰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보의 홍수란 것은 정보가 많다는 의미도 되지만 쓰레기가 많다는 뜻도 된다. 정보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 최소한 나는 그것에 일조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태도가 인터넷에서의 정보 홍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은 종종 편리함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온다. 편리하면 좋은 것이라는 편의주의에서 벗어나는 것,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디시인사이드식의 천박함에 물들지 않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니터로 읽다가 핵심을 놓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나는 평소에 정독이 필요한 글은 항상 인쇄하여 읽는다. 인쇄용으로 적합하게 구성되지 않은 웹페이지도 많기 때문에 이런 작업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이 방법을 권한다.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모니터가 익숙한 사람들은 익숙한 대로 읽으면 된다. 인터넷의 정보들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먼저 독자들이 인터넷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각자에게 알맞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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