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5호 달콤쌉싸름한페미니즘
국제결혼, 그 속에서의 이주여성의 목소리는?

조지혜 / 언니네트워크 대표   zoze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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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었던 ‘법조계의 자매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여성들에 의해 이혼이 청구된 적이 없었다는 카메룬의 한 지역을 배경으로, 유무형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 온 여성들을 위해 노력하는 정의로운 여성 법조인들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남편과의 이혼을 요구하기 위해 법정에 선 여인들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남편과 나이차가 아주 많이 나는 (비교적) 젊은 아내들이며, 남편에 대한 사랑이나 본인의 결심보다는 경제적인 문제 등 다른 이유로 결혼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학대를 못 이겨 도망친 한 여성은 ‘아버지가 지참금 때문에 나를 팔아넘겼다’는 말을 서슴없이 뱉어내기도 한다.

<네트워커>의 지면에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동남아시아 지역이 대부분을 이루는 이주 여성들과 한국 남성들간의 국제결혼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떠올렸을 때, 나는 저 여인들의 이야기를 함께 떠올렸다.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보아왔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 그리고 이주 여성들의 삶에 대해 다룬 여러 매체의 프로그램들. 통계상으로도 이미 전체 결혼 건수의 10%가 넘어섰다고 하는 이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눈에 보이는 부분들조차도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물론 한국 남성과 결혼하며 이주하게 된 베트남이나 필리핀 여성들이 모두 저 영화에 나타난 여성들과 같은 폭력이나 억압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가족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진정성을 섣불리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들을 모두 싸잡아 ‘팔려온 신부’라고 통칭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점들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수준에 머물러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쁜 점은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그 과정에서 수익을 챙기기 위해 이들의 삶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이 분명히 있으나, 그에 대해 모두가 오랫동안 모른 척 해왔다는 것이다.

“초혼, 재혼, 장애, 연세많으신 분,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는 생활정보지의 광고들, 그리고 국제결혼업체들의 홈페이지에서도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 4월에는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조선일보 기사가 실려 많은 이들이 분노했던 일도 있었다. ‘한국의 왕자님들’이라는 표현부터 시작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 이들이 순종적인 아내상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그려낸 이 기사에서 한사람의 인간인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및 베트남의 많은 이들이 즉각적인 문제제기를 해서 결국 이 기사에 대해 조선일보가 사과했다고 하나, 사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이렇게 결혼으로 이주하게 된 외국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들도 ‘얼마나 한국 생활에 적응했는가, 한국의 아내가 되었는가’이지, 평등한 관계로서의 만남이나 문화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결혼이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특히 대를 이어야 한다는 (그래서 아이를 낳아줄 수 있는 여성을 찾게 되는) 정상 가족에 대한 강박증, ‘처녀’라는 표현이 불러오는 성적 순결함에 대한 집착, 광고물의 ‘환불 가능’이라는 단어들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상품화와 위법성 여부, 그리고 가족이나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특정 결혼 사례들만을 부각시키는 일부 대중 매체의 태도. 이 과정에서 실제 이주여성들의 시선, 그들의 목소리는 과연 얼마나 드러나고 있는 것일까. 국제결혼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는 오히려 이 여성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5월 20일 서울의 대학로에서는 인권단체 ‘나와우리’와 베트남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여성을 상품화하는 국제결혼광고 반대’ 캠페인을 펼쳤다. 그리고 그 캠페인을 계기로 내가 활동하고 있는 언니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 인권단체들이 모이게 되어, 현재 차별적인 내용의 국제결혼 광고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상황을 보다 폭넓게 알려내고 국가 인권위에 진정서도 제출할 예정이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광고만을 문제삼는 거라고, 수박 겉핥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국제결혼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층적인 문제와 이주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은 아직 많다. 광고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 첫 발을 떼는 과정 중의 하나이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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