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기획 [월드컵과 정보인권]
붉은 6월, 비이성적 TV
동시 중계를 막기 위한 지상파 방송사의 협력과 조율 필요

김형진 /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팀장   icdolval@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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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6월이 지나갔다. 월드컵의 시작은 온통 사회를 비이성적 영역으로 내몰았고, 특히나 ‘미디어’는 너나 할 것 없이 ‘월드컵 대목’을 잡기 위해 ‘애국’과 ‘축제’로 포장하며 계산기를 두들겨 댔다. 그러나 대한민국 16강 진출이 확정이 아니듯, 게임의 앞뒤를 예측할 수 없듯이 미디어의 손익계산서 역시 불확실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월드컵 기간 지상파 방송 3사의 광고수익(순수익)에서 중계권료를 뺀 결과, KBS2는 마이너스 10억원, MBC는 83억5000만 원, SBS 58억5000만 원을 남겼다. 그러나 지난 2002년에 비해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이 증가한 것을 감안, 2002년 월드컵 때보다 많은 제작비를 사용했다고 가정한다면, 당연히 KBS의 적자는 말할 것도 없고, MBC와 SBS의 순수익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보기 좋은 결과이고 ‘쌤통’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상파 방송은 정규뉴스는 물론, 시사교양 프로그램, 게다가 연예오락 프로그램까지 ‘월드컵 특집’으로 도배하기 시작하였고, 월드컵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게임에 돌입하였다. 지난 6월 13일 한국과 토고의 경기가 있던 날 월드컵 특집방송 프로그램의 편성비율(12일 밤 12시부터 13일 밤 12시까지 24시간을 기준으로)은 KBS1 : 61.1%, KBS2 : 45.8%, MBC : 77%, SBS : 87.5%. 엄청난 수치이다. 이미 몇 차례의 평가전을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동시 중계를 하면서 시청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방송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전과로, 월드컵이 시작되자마자 지상파 방송 3사는 공공재인 지상파를 자신들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강도짓’을 하고 말았다.

당시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 내 비이성적 상황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동시 중계와 관련해서 일본의 경우 공․민영 협력형 모델로, 위성방송 <스카이 퍼펙>에서 전 경기를 중계하나 지상파의 경우에는 ‘재팬 콘소시움’을 통해 40개 경기 중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공․민영 협력형 모델로 ZDF/ARD(공영방송)와 민영방송이 사전 조율을 통해 동시 중계를 피하고 있다. 영국은 공영방송 BBC와 민영방송 ITV가 나누어 중계를 하고, 호주의 경우에는 기간방송사에 해당하는 ABC에서는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편성하지 않고, 다민족/다언어 방송인 공영방송 SBS에서만 독점 중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 중계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현재 우리 방송이 가지고 있는 공공적 역할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의 공공성, 다양성의 역할과 책임보다는 장삿속만을 드러내는 음흉한 방송사의 경영철학. 그래서 방송은 죽은 것이 되고 말았다.

월드컵 중계, 보도, 그리고 특별 편성도 분명히 보편적 서비스이자 공익적 서비스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이벤트에 있어서 사회적 상황을 고려, 지상파 방송에서의 보편적 접근과 무료 서비스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과잉 중계와 편성. 방송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중계권 협상 및 중계 방식을 바꿔야 한다. 다른 나라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시 중계를 막기 위한 지상파 방송사의 협력과 조율이 필요하다. 더불어 지상파와 뉴미디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합리적 사전조절 역시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방송법을 통한 제도적 규제 역시 고려해야 한다. 편성비율과 쿼터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이다. 스포츠 중계 및 관련 프로그램 역시 이와 같은 비율을 설정하고, 전체 방송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규제보다 지상파 방송사의 적극적인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광고 유치, 시청률 제고의 상업적 논리에 말려 중장기적으로 ‘탈규제’, ‘민영화’, ‘개방화’를 내세운 자본 논리에 장악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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