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여기는
최소주의와 웹

이강룡 / 웹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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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사태들도 사람의 일이라,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같거나 유사하다. 어떤 윤리 기준이랄까 그런 것은 아니고 하나의 행동 규준으로 삼으면 좋을 하나의 원칙을 제안한다. 최소주의다. 꼭 필요한 것만 하는 것이 최소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다른 말로, 쓸데없는 것은 아예 만들지 않는 태도다. 즉 자전거처럼 효용만 있고 오염은 유발하지 않는, 애초에 만들어내지 않으니 배출할 것도 없는 상태. 인터넷도 자원이다. 인터넷에서 불필요한 자료를 만들지 않거나 쓸데없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태도가 인터넷 자원을 절약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주의에 관한 예를 들자면, 인간에게는 두 채 이상의 집이 필요하지 않듯 두 개 이상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호주인들 중 상당수는 집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집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 채도 아니고 두 채 이상 집을 소유하는 사람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 개인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한 사람만 그것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최소주의가 지향하는 그러한 태도는, 그렇지 않은 태도와 중대한 차이를 만든다. 최소주의는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삶을 추구하지 않고, 애초 적당히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지향한다.

최소주의에 걸맞는, 성실한 인간을 가리켜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한다. 법과 제도는 원래 최소주의를 지향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임에도 현대에 와서는 애초의 목적을 상실한 측면이 많다. 최소주의자는 더 이상 법 없이 살 수 없게 됐다. 최소주의의 원칙을 적용하면 인터넷에서의 저작권 문제(또는 분쟁)를 해결하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가령, 자료의 작성자가 스스로 저작물의 공유 범위를 정한다든지, 특정한 포맷의 자료에 대해서는 애초에 저작권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의 풍토(현재 상황에서는 공정이용 범위 확대)를 조성한다든지, 또는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노력(동일성유지, 고유 링크 권장)이 일상적인 일이 되도록 하는데 최소주의를 그 근본 원칙으로 삼을 수 있다.

어떤 사태를 가장 적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이리저리 겉도는 글, 중언부언, 즉 들어낼 것이 많은 글에 시간을 쏟는 것은 허무한 일이다. 글쓰기의 원칙은 최소주의와 비슷하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실린 몇 구절을 최소주의의 관점에서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적용할 수 있다.

“어떤 내용이라야 신어(新語)나 외래어를 써서 아름다워질까? 그것은 간단하다. 신어나 외래어가 자연스럽게 나와질, 또는 신어와 외래어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내용에 뿐이다.” - 이것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때 적용해 볼 수 있다.

“기사문 : 어떤 사건을 과장 없이, 장식 없이, 누락 없이, 분명 정확하게 기록하는 글이다.” - 스포츠 연예 기사를 만드는 언론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인터넷 매체(혹은 인터넷으로도 기사를 유통하는 오프라인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 부풀리기, 허위 정보 생산, 유포 등은 최소주의와 상극을 이룬다.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관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문장에 있어선 미덕이 된다.” –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때, 예를 들어 블로그 같은 도구를 이용해 글이나 그림을 올릴 때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행동 규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소주의가 허무주의로 빠져서는 곤란하다. 최소주의는 종종 '인생 뭐 있어' 하는 허무주의를 동반하는데, 표면적으로, 그것은 '인생 뭐 있어'하는 한탕주의의 슬로건과 일치한다. 허무주의는 한탕주의 못지않게 위험하다. 그것은 맥락을 잘못 파악한데서 비롯한다. 'TV 끄고 책을 읽자'는 식의 태도가 유치한 넌센스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 자크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은 원시의 야만 상태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최소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스님처럼 살자는 말이 아니라 탐욕스럽지 않게 살자는 취지에서다. 최소주의는 가장 적은 것을 지향하는 태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가급적 잉여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고 돌보자는 태도다. 웹에는 어떠한 잉여가 발생하고 또 그것은 어떠한 문제를 유발하는가. 잉여는 사고뭉치다. 최소주의가 그것을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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