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학교이야기
컴퓨터 만능

김현식 / 포항 대동중학교 교사   yonorang@edu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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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발송하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정기 고사마다 예전에는 주관식 문제를 채점하느라 몇 시간씩 고생하여 카드에 점수를 다시 표시하곤 하였지만, 요즘은 평소 수행평가로 처리하기에 실제로 기말 고사 때가 되어도 교사들은 그다지 바쁘지 않다. 학생들은 하루 두세 과목을 다섯 문항 중에서 정답을 골라 수성 사인펜으로 답안 카드에 마킹하면 된다. 시험이 끝나고 답안 카드가 카드리더기에 의해 읽혀지기만 하면 바로 점수 처리가 된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네이스, NEIS)에서 분리된 교무업무시스템으로 처리되는 성적은 학생정답정오표, 문항분석, 도수분포 등 각종 통계까지 자세하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채점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점수 확인을 하면 예전에 비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표나게 줄어들었다. 답안 카드를 보지 않고서도 문항별 학생정답정오표에 자기가 어떤 번호를 표기하였는지, 정답과 바로 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컴퓨터가 하는 것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그런데 과연 컴퓨터는 틀림없이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일까 의심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정답을 3번이라고 표기했는데, 실수로 2번이나 4번 문항에 수성 사인펜이 약간 묻었을 경우 컴퓨터는 답안을 2개 표기한 것으로 판단하여 오답으로 처리한다. 심지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이물질로 인해 표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실제로 교사는 답안을 일일이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학생은 연필로 정답에 살짝 표시했다가 나중에 수성 사인펜으로 표기한다. 컴퓨터는 연필의 흑연을 예민하게 감지하기에 수정 답안을 적을 때 원래 표기한 답의 연필 자국을 완전하게 지우지 않으면 역시 두 개 표기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문제와는 다르게 지필 평가나 수행 평가의 선행 작업이 잘못된 경우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수행 평가 만점을 50점으로 해야 하는데, 40점으로 선행 작업을 하면 전체 점수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는 만능이 아니라 인간이 설계한 대로 단순 반복 작업을 좀더 빠르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수백억을 투입하여 우리 나라 최고의 기술진이 만든 교무업무시스템이기에 완벽하게 만들어졌으리라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부분 하나라도 잘못 동작하고 있지는 않는지, 늘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모든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완벽하지 않고 나름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성적 처리 프로그램에서도 전출 학생이 일괄하여 반영되지 않아 모든 교과목 담당 교사가 전출 표시를 일일이 해주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 프로그램에서 쉽게 반영하면 십여 명의 교사가 여러 번 처리해야 할 일을 줄일 수 있는데,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여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교육 현장에서 컴퓨터는 만능이 아니라 융통성이 거의 없는 깡통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 정보화는 교육 활동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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