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만화뒤집기
만나기 힘든(?) 새로운 만화들의 가능성
BOB - 코믹무크01[밥] (석정현 외/거북이북스)

신성식 / 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   toono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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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뻐그러진 것일까? 아니라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가? 그도 아니면 누구 말마따나 나쁘지 않은 것인가? 그 놈의 지긋지긋한 한국 만화시장에 대한 얘기다. 경제학적 면에서 시장의 상황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가치 등등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한국의 만화판 전체 말이다. 뭐 까짓 시장이라고 하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쩌랴 만은 만화단체에서 실무를 맡고 있다보니 두어 가지 불안한 징후가 상당히 거슬린다. 그 하나는 단체에 배달되는 만화책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여러 만화관련 시상 등에 추천할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통 새 책이 나오면 보도 자료와 함께 새 책이 단체에 배달되는데 전에는 일주일, 혹은 열흘이면 한두 권은 왔었는데 이젠 달 단위로 따져도 적다. 아, 물론 그런 관행이 깨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정말 다행이고… 그 창작품의 종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결과 일단 어디다 추천해 줄 작품의 목록조차 뽑기 힘들다.
여기서 잠깐! 뭔가 좀 이상하다고요? 여전히 만화를 많이 보신다고요? 네에, 물론 그건 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사실 여러분들이 보시는 건 대부분 일본만화일 테니까 말이다. 좀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 만화는 그야말로 여전히 여전하다. 허허허.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있고, 작품의 밀도는 여전히 2% 부족하고, 출판사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고, 독자는 여전히 빌려본다. 누구의 탓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이젠 식상하다. 정말이지 로또에 당첨되는 걸 바라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무슨 얘기냐면, 어느 날 홀연히 만화판에 영웅이 나타나서 독자도 휘어잡고 판도 키우고 관심도 불러일으키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허허허. 뭐 이 정도라면 로또보다는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근데… 긍정할수록 불안한 건 왜지?) 해서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고민하게 된 것이 바로 잡지 형식의 출간이다. 단독으로 출간하기 어려우므로 모아서 내는 것이다. 잡지는 일단 떠볼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예전에 잡지가 한참 잘 나갈 때도 잡지 자체로 돈벌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잡지에 실린 작품 중에 인기 있는 게 단행본으로 나오고 이를 통해서 수익이 나는 것이다. 왜냐면 출판 자체가 사실 큰 도박이다. 고로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잡지를 통해 미리 팔릴 책을 고르는 것이다.

BOB 역시 여러 작가의 작품이 모여 있다. 그런 점에서 잡지이다.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을 감안하여 무크의 형식도 취했다. 하지만 BOB이 다른 작품집과 다른 것은 기획이다. 매 호 하나의 소재를 쫒는다는 점이다. 이번 호는 밥(먹는 밥)이고 다음호는 ‘에로틱’이다. 여는 글을 빌면 ‘최초의 컨셉트무크지’이다. 처음이 의미하는 바도 적지 않고 아무튼 나름대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밥이 바로 그 ‘영웅’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전에도 모아낸다는 의미에서 잡지 형식의 작품집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최근에는 ‘파마헤드’도 있었고 한참 거슬러 올라가 ‘만화실험 봄’도 있었고(그러고 보니 별로 많지 않았네, 허허). 정기성을 포함하면 더 많아져서 최근의 ‘계간만화’나 ‘새만화책’도 있고, 거꾸로 완전한 단행본으로는 ‘십시일반’이나 ‘사이시옷’이 있다. 한편으로는 많지는 않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계속 되는 것에 희망을 걸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오죽 안 되면 모아낼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뻥튀기 수준의 낙관론도 아니고 이젠 모든 게 끝났다는 절망의 비약도 아니다. 그저 꾸준히 모색하고 도전하는 것이 살길이리라.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밥’은 ‘컨셉트무크지’이다. 일정한 또는 전문적인 주제나 소재에 집중하여 작가들의 다양한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매 호 ‘컨셉트’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제호도 달라진다. 그래서 실은 이 잡지의 진짜 이름은 코믹 무크가 맞을게다. 이 ‘코믹무크’가 제발 성공하길 바란다. ‘새만화책’이 제발 성공하길 바란다. 아무튼 뭔가가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또 두어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하나는 이런 작품을 쉽게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밥을 사러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ㄱ’ 서점에 갔는데 정말이지 못 찾겠다 꾀꼬리다. 만화 코너에는 아이들을 위한 학습 교양만화가 대부분이고 코믹스를 제외한 만화책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번에도 포기하고 이번에도 포기하고. 도대체 왜 내가 사고 싶은 만화는 수필 코너에 꽂혀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기가 힘든데 많이 팔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다른 걱정꺼리는 책마다의 차별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에서 넷 정도의 작가는 밥에서도 계간만화에서도 파마헤드에서도 새만화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보기에 차별성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만화판 사람들이 보기엔 고만고만해 보이는 것이다. 정작 봤으면 하는 대상은 만나질 못하고 우리 안에서 식상해버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기댈 곳은 작품뿐이다. 밥의 다음호 ‘에로틱’을 기대하면서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푸념도 한숨에 싹 날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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