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기획 [월드컵과 정보인권]
장외시청권 앞에 무시된 문화향유의 권리

정우혁 / 네트워커   ohri@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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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거리응원은 시민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새로운 문화의 하나로 잡힌 듯이 보인다. 대학이나 길거리의 소규모 광장의 스크린 앞에 모인 시민들은 삼삼오오 자율적으로 응원을 하기도 했으며, 광화문이나 시청과 같은 대규모 광장에 수십만이 모여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대형스크린을 준비해서 중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시민과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거리응원전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거리 선전전조차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반면에 거대 후원자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주관한 대규모 응원전들이 성화를 이루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국제축구연맹(FIFA, 아래 피파)이 요구하고 있는 장외시청권 때문이다. 피파가 규정하고 있는 장외시청권에 따르면, 경기장 밖의 공공장소에서 2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스크린을 통해 방송을 할 경우, 사전에 피파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며, 최고 5000만 원까지 장외 방송에 대한 비용을 한국방송협회에 지급해야만 한다. 장외시청권은 원래 피파가 가지고 있는 부가판권의 하나였는데, 2002년 월드컵 전까지는 그렇게 강력히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피파는 장외시청권 규정을 강화하였다. 전문가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거리응원전의 성공이 피파의 장외시청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피파는 장외시청권 규정을 어길 경우 법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대다수의 네티즌은 시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거리응원이 피파의 상업적인 정책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방송협회의 홈페이지 등에 분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항의성 여론이 빗발치자, 방송협회는 한 발짝 물러서 비영리적인 중계는 허용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영리와 비영리를 나누는 기준이 사실상 모호해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못했다. 반면 에스케이텔레콤 등 중계권료를 지급한 회사 또는 단체에서 주관한 대규모 응원전은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이 되었다.

장외시청권을 강화하는 이유에 대해서 피파 측은 월드컵 중계권을 사들인 방송사 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일이 승인을 얻도록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높은 광고료와 중계료를 받아내기 위한 장사 속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월드컵은 전 세계적으로 연인원 330억 명이 시청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2006년 월드컵으로 피파는 그 중계권료만 1조 3천억 원을 웃도는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중계권 시장 자체가 이미 거대한 공룡이 되었으며, 방송사들은 높은 중계료를 지급하고 중계권을 사야만 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피파의 정책 탓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만들어진 거리응원과 이를 즐길 수 있는 문화향유의 권리, 스포츠를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접근권 등이 묵살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6년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자율적으로 계획된 장외시청과 거리응원전은 피파의 비용요구 때문에 취소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소규모 방송이더라도 피파의 허락을 받지 않는다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할 수도 있으며,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피파의 독점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업주의 정책으로 인해 시민들의 문화권과 시청권이 침해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오히려 주파수의 공공성과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호하고 더욱 확대하기 위한 중계권의 공공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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