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표지이야기 [형사사법통합망, 제2의 네이스?]
수사권 독립은 허상으로 끝날 것인가?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사업 속에 숨겨진 검찰의 의도

윤현식 /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법제실 연구원   finger@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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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조항인 제196조 제1항에는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오직 검찰의 수사지휘 하에서만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이 규정은 지난 반세기 동안 마치 불문율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법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의 문제는 검경 간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발생시키며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애초 사법개혁위원회에서 구상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검찰의 결사적인 반발에 부딪혀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지다가 현재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 경찰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온갖 범법행위에 대해 가장 먼저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하면서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많은 경우 검찰이 실질적인 수사지휘를 하지 않더라도 경찰에 의해 종결처리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관한 모든 권한은 ‘법적’으로 검찰의 손에 집중되어 있으며 담당검사의 최종적인 판단이 범죄수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실제 업무는 경찰이 도맡아 하면서도, 수사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경찰이 전부 책임을 지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한다고 경찰은 주장한다. 또한 지능적인 범죄자의 경우 경찰의 수사를 거부하면서 검사에게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등 경찰의 수사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현상도 발생한다고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경찰이 마치 검찰의 ‘시다바리’ 역할로 전락하는 위상추락에 대해 많은 경찰들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찰이 수사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많은 논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는 범위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이며, 검찰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무수한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검경 간 수사권 독립을 놓고 벌어지는 신경전 역시도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시기에 검찰이 추진하고 있는 소위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사업(이하 통합망)>은 수사권 독립과 관련하여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신속 · 공정 · 투명한 형사사법절차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기존 경찰, 검찰, 법원, 교정시설 등이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형사사법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단일화된 통합망으로 개편하고, 이 데이터베이스 안에 “형사사건의 접수 · 수사 · 기소 · 불기소 · 재판 · 형집행 등” 모든 형사사법관련 정보 일체를 전산 처리하여 각 형사사법기관이 “그 정보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기획단규정 제2조).
새로운 통합망은 각 형사사법기관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데이터베이스 간에 연결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네트워크 운용을 원활하게 하는 사업이 아니다. LG CNS가 맡아 진행하고 있는 이 사업은 완전히 새로운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다시 말해, 검찰이 관리하는 통합망을 새롭게 구축하고 각 형사사법기관에서는 필요시 이 망에 접속해서 통합 관리되는 데이터베이스 안에 모든 정보를 입력하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본질이다. 마치 몇 년 전의 ‘NEIS 사업’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사업은 그래서 NEIS 사업 추진 당시와 마찬가지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형 확정자는 물론 피의자와 참고인, 하다못해 사건을 신고한 사람의 정보까지도 일체가 하나의 통합망 안에 보관되고 수사기관 관계자에 의해 열람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에 치명적인 위협을 안겨준다는 문제점, 정보입력과 관리체계의 말단에서 경찰들의 업무량이 폭증한다는 경찰측의 불만,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구축한 기존의 시스템이 졸지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과 동시에 불필요하게 과도한 국가예산을 중복적으로 투자한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 통합망이 구축될 경우 실질적인 측면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물건너 가는 일이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통합망의 관리주체가 검찰이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현재 통합형사사법체계구축기획단규정 제3조에 따르면 단장은 “판사 · 검사 또는 변호사로 재직 또는 재임한 경력이 10년 이상인 공무원 중에서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즉, 사업기획단의 책임이 경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재조(在曹)경력 10년 이상의 법조인 출신이 맡도록 되어 있으며 그 임명도 행정자치부장관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원천적으로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통합망 구성이 가능하게 된다는 결론을 유도한다. 또한 통합망이 구축된 후 역시 이러한 구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이 사업은 최종적으로 검찰이 모든 형사사법체계의 정보 일체를 독점하는 것으로 귀착될 것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러한 비판은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1차 사업을 추진한 LG CNS의 시연회에서 정보입력 작업의 80%를 경찰이 담당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위한 권한은 검찰에게 거의 독점적으로 보장되는 형태의 시스템이 소개되었다. 이렇게 될 경우 검찰은 경찰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실질적인 수사지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사건접수를 받은 경찰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종결한 사건에 대해 이후 통합망을 들여다보던 검찰이 해당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상황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찰은 지금과 같은 지휘계통 아래서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수사지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수사권 독립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검찰 역시 일부 범죄에 대해 경찰의 독립적인 수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물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찰이 전혀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기는 하나 대세는 일정정도 검찰로 하여금 독점적으로 향유해왔던 수사권의 일부를 경찰에게 할양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수사권의 일부는 절차적으로 경찰에게 돌려질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통합망이 구축되면 이러한 한정적인 수사권의 독립마저도 공염불로 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경찰의 우려다. 아무리 법적으로 수사권 독립이 규정된다고 할지라도 경찰의 모든 활동을 검찰이 통합망을 통해 관리감독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경찰의 수사는 여전히 검찰의 지휘 하에 예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미 2004년에 실시된 ‘업무재설계 및 정보화전략계획(BPR/ISP)’ 과정에서 기관의 위상문제를 들어 이 사업에서 빠져버렸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경찰 내부에서는 힘없는 경찰만 검찰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고 있다. 2005년 10월, 대통령까지도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를 한 바 있어 검찰은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2월,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검찰이 인터넷망 일체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최근에는 증거여부와 관련 없이 일정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는 사람들 모두의 유전자 정보를 DB화 하는 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검찰이 형사사법통합망까지 관리한다는 것에 대해 검찰권력의 무한확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검찰은 직시해야할 것이다. “다 해먹으라고 해”라고 내뱉던 경찰청 한 관계자의 푸념은 정반대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검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검찰은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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