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기획 [월드컵과 정보인권]
그는 간데없고, 그녀만이 홀로 나부꼈다.
왜 인터넷에서는 ‘월드컵 女’만 보이는가?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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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별 예선 첫 경기인 토고전이 있었던 지난 6월 13일 밤. 4년을 기다려 얻은 짜릿한 역전승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전국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연호했던 그 뜨거운 밤이 지나고, 다음날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도로 유포됐다. 토고전이 끝난 후, 서울 압구정동에서 한 쌍의 남녀가 자동차 지붕에 올라가서 연출한 성행위 퍼포먼스를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게시되는 곳마다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고, 댓글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네티즌은 이 사진 속의 여성에게 ‘토섹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비방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함께 퍼포먼스를 펼친 남성에 대해서는 비난은커녕 언급조차 없었다.

거리 응원에서는 보통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임에도, 온라인에서 오고 가는 온갖 뒷이야기는 항상 ‘그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에 대해 “여성들도 스포츠를 자유롭게 즐길 권리가 있다.”라며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녀들을 즐기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아무 말이 없다.

‘토섹남’은 제거하고 ‘토섹녀’만을 보는 시선에서 알 수 있듯이, 온라인의 눈은 보통 폭력적인 남성의 눈일 경우가 많다. 이는 온라인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오프라인의 불평등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기술 교육의 부재의 결과 온라인에의 접근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용이하다. 또한, 온라인상의 토론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한 여성 네티즌은 온라인에서는 일부러 영어를 사용하고, 말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여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불필요하고 감정적인 논쟁에 휘말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라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늘 평가와 검열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은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더욱 부추기는 촉매제가 된다. 월드컵 기간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여성이 더 폭력적이며, 관음적인 시선에 노출된다. 이는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공격성에 사람들이 휘말리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업의 온라인 마케팅 전략이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꺼리’들을 제공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사진 한 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미나’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번 월드컵 때도, 한국의 조별 예선이 치러진 2주 동안 온라인에 나타난 월드컵 女들 중 몇몇이 연예 기획사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좌절로 2002년 월드컵 때와는 달리, 월드컵 女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 중심적인 온라인 문화에 대한 네티즌의 성찰이 없다면, 2010년 월드컵에서도 이러한 폐단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온라인에서 ‘엘프남’, ‘시청남’을 보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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