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6호 기획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미키 마우스가 죽지 않고는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은 끝나지 않는가?
미국,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의 아주 간략한 역사

김지성 /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community@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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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저작권법은 일반 저작물은 저작자 사후 70년, 법인 저작물 등의 경우는 출판 후 95년 동안 보호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보호기간을 규정한 저작권법 개정은 1998년 저작권 기간 연장 법안(Copyright Term Extension Act 1998, 이하 CTEA)에 의해서다. 미국의 저작권법 개정의 역사 속에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점차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의 법적 근거의 출발은 1787년 미국 헌법의 제정 당시에 포함된 소위 “저작권 조항” 또는 “지적 재산 조항”이다. 이 조항이 헌법에 포함되기까지는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버지니아 대표로 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제임스 메디슨에 의해 관철되었다. 미국 헌법의 초안자들은 독점 일반에 대해 강한 반대를 했고, 지적 재산에 대해 독점을 인정하는 저작권 조항에 반대했다. 독립 선언문을 작성했던 토마스 제퍼슨도 초기에는 저작권 조항에 반대했다고 한다. 저작권 조항은 연방 의회가 저술과 발견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저작자와 발명가들에게 제한된 시간 동안 확보해 줌으로써 과학과 유용한 기예의 진보를 촉진하는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 저작권 보호기간, 초기 14년에서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길어져

미국 최초의 저작권법은 1672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처음 도입이 되었으나, 이는 헌법 제정 이전이며, 헌법 제정 이후 첫 저작권법은 1790년에 제정되었다. 1790년 저작권법은 영국의 앤여왕법(Statute of Anne)을 본 따 만들어졌다. 이 법은 저작자에게 14년간의 보호 기간을 보장하고 추가로 14년의 연장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1831년, 보호 기간은 두 배가 늘어 28년이 되었다. 1909년에 14년의 추가 연장 가능 기간이 두 배가 되어 28년으로 늘었다. 이 기간의 일화로는 우리에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이 의회의 한 위원회에 출석하여 보호 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저작권법은 1976년에 전면적인 개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호 기간은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마크 트웨인의 꿈이 이루어지는데 70년이 걸린 것이다.

이제 이 글의 핵심 사건인 1998년 ‘소니 보노 법안’ 또는 ‘미키 마우스 보호 법안’으로도 불리는 CTEA의 입법 과정을 살펴보자. 이 법안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유럽 연합에서 회원국에게 저작권의 보호를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입법하도록 하는 지침(Directive)을 1993년에 통과시킨 것이 미국의 저작권자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디즈니사의 초기 미키 마우스 애니메이션 작품인 ‘스팀보트 윌리’와 같은 아직도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진 20세기 초의 저작물들이 2000년대 초반에 보호기간이 종료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가 배경을 이룬다. 디즈니사를 포함한 저작권자들의 적극적인 의회 로비의 결과로 70년대 팝 밴드의 멤버이자 유명한 TV 쇼인 ‘소니와 쉐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하원 의원 소니보노가 1995년에 CTEA를 발의했다. 소니 보노라는 인물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 법안의 직접적인 혜택이 다국적 오락 산업에 돌아가는 것이 은폐되고, 대신 창작자들이 수혜자로 비추어지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소니 보노 의원이 스키사고로 죽고 의원직을 이은 미망인 메리 보노에 따르면, 소니 보노 의원은 보호 기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당시 미국영화협회(MPAA, Motion Pictures Associ ation of America)의 회장이던 잭 발렌티는 “영원에서 하루 적은(forever less one day)” 보호기간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법안의 통과에 도움이 되었던 상원 보고서 104-315는 저작물 교역에서의 흑자 유지, 외국에서 미국 저작물의 보호, 정당한 창작자 보상, 그리고 경제적 생산 동기부여 등을 들어 보호 기간 연장을 뒷받침했다.
1998년 의회는 CTEA를 발성 투표(voice vote: 예 또는 아니오를 소리 내어 찬반 의사를 밝히고 사회자가 이를 기준으로 표결의 결과를 결정하는 방식)를 통해 통과시켰다. 발성 투표로 표결한 결과, 어떤 의원이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의 기록이 남지 않게 되었다.

저작권 보호기간을 둘러싼 찬반 논란

CTEA의 입법 과정에서 찬성 측의 주장 몇 가지를 살펴보면, 1)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었으며, 2) 미국과 유럽의 보호 기간의 차이가 오락 산업의 국제적인 영업에 지장을 주며, 3) 미국 헌법은 국회에 ‘과학과 유용한 기예의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 보호 기간을 설정할 수 있고, 기간은 ‘제한된 시간’이면 되지 그 길이가 얼마나 긴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 측은 1) 대부분의 저작물이 팔리는 것은 출판 후 몇 년에 불과하여 기간을 늘리는 것이 디즈니와 같은 극소수의 오락 산업 자본 외에는 생산을 촉진하는 효과가 없으며, 2) 1976년의 기간 연장에 이어 20년 만에 CTEA를 통해 보호 기간을 다시 20년 더 늘리는 것은 헌법에서 ‘제한된 시간’이라고 명시한 정신을 훼손하고 보호 기간을 영구화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으며, 3) 저작권법의 변천에 따라 늘어나는 보호 기간이 실제 인간의 기대 수명이 늘어난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CTEA의 입법 이후의 반대 행동으로 대표적인 것이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을 비영리적으로 인터넷으로 출판하는 엘드리치 프레스(Eldritch Press)의 에릭 엘드레드(Eric Eldred) 등이 제기한 위헌 소송이 있다. 이 사건은 ‘엘드레드 대 애쉬크로프트 사건’으로 불린다. (애쉬크로프트는 대법원 판결 당시 미 법무장관이다.) 원고는 1심 소송을 1999년 1월 워싱턴 D.C.의 지방 법원에 제기하였다. 이 때, 원고들은 CTEA가 1)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의 균형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2)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을 소급하여 적용(즉, 향후에 창작될 저작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기존에 창작된 저작물의 보호기간도 소급하여 연장한 것)하여 ‘저작권 조항’의 ‘제한된 시간’이라는 헌법적 제한을 위배했으며, 그리고 3) 공공신탁이론 pub lic trust doctrine, 수로와 같이 시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재산권을 시민이 국가에 신탁한 것으로 보고, 국가는 이러한 재산권을 사적으로 소유하도록 해서도 안 되고 재산권의 대상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유지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법리)을 위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지방법원은 세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원고는 공공신탁이론 주장을 빼고 대신 헌법의 저작권 조항은 ‘과학과 유용한 기예의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서’ 저작권을 보호하는데, 기간 연장의 소급은 이러한 목적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항소심에서 2대1의 판결로 원고는 패소했고, 9명의 판사가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부에서 재결해줄 것을 청원했지만 이 청원은 7대2로 거부되었다.

미 대법원, 보호기간 연장법안에 합헌 판결

원고들은 대법원이 사건을 맡아줄 것을 청원하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2002년 10월 9일 구두 심리가 열렸다. 원고 측에서는 로렌스 레식 교수가 이끄는 변호인단이 나섰고, 정부 측은 법무차관(연방 최고 법원에서 정부 측의 대리인)인 테오도르 올센이 대리를 했다. 2003년 1월 15일 판결은 7대2로 원고의 패소를 결정했다. 긴스버그 판사가 쓴 다수 의견에 따르면, 연장된 보호기간의 소급 적용은, 의회가 1790년 첫 저작권법의 제정 때부터 보호 기간을 소급하여 적용하였고 이후에도 그러하였다는 점과 헌법 저작권 조항의 ‘제한된 시간’에서 ‘제한된’이라는 의미가 (원고의 주장처럼 저작물이 창작되고 발표될 당시 시점의 보호 기간에 고정된다는 것이 아니라) 보호 기간이 유한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저작권 조항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CTEA가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수정헌법 제1조와 저작권 조항이 채택된 시기가 가까워 헌법의 초안자들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을 통한 ‘제한된 독점’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을 암시하고 있고, 저작권은 생각이나 사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이나 사실의 소통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하여 거부하였다.

대법원의 판결로 CTEA를 반대하던 측은 이번 판결에서 CTEA를 반대하기 위해서 동원했던 법적 주장과 전술을 다시는 법정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보호 기간이 유한하기만 하면 의회가 그 기간을 얼마나 늘리던 그것은 위헌이 아니라는 단호한 판결로 말미암아, 의회가 보호 기간에 대해서는 영구화하는 것을 빼고는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 위헌 소송에 따른 개별 쟁점에 대한 논쟁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사건이 분명히 확인해 준 것은 원고 측과 정부 측을 각각 지지하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이 제출한 법정 의견서(amicus brief)들을 통해 드러난 저작권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다. 원고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낸 개인과 단체를 보면, 대학예술협회, 인텔사(부분적으로 지지), 미국법률도서관협회를 비롯한 15개의 도서관 협회들, 미국작가조합, 5명의 헌법학자, 17명의 경제학자, 53명의 지적재산법학자 외 다수가 참가하고 있다. 정부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개인과 단체를 보면, AOL타임워너사, 닥터수스사(Dr. Se uss Enterprises), 미국영화협회, 미국 음반산업협회, 미국출판협회, 미국감독조합, 미국송라이터조합, 미국지적재산법협회, 해치 상원의원(Orrin G. Hatch), 하원 법사위 의원들 외 다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의 마무리를 2002년 10월 9일에 있었던 대법원 첫 구두심리 이후 인터넷 매체가 보도한 당시 미국영화협회 잭 발렌티 회장이 구두심리에 대해 보인 반응을 옮기는 것으로 하겠다. 발렌티 당시 회장에게 주어진 질문은 영화의 중요성과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영화를 넘기는 것이 미국에 해를 끼치는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영화는 이 나라 국내 총생산의 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신경제보다 세배나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는 농업, 항공기,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 부품보다 더 많은 국제 수익(revenue)을 벌어들이고 있다. 영화 산업만이 유일하게 세계의 모든 개별 국가와의 무역에서 흑자 수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역주: 영화산업) 중요한 영양분(nourishing element)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걸 붕괴시킨다면, 당신은 미국 경제를 갈가리 찢게 될 것이다. 난 결과를 예측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난 의회가 그러기를 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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