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달콤쌉싸름한페미니즘
된장녀와 고추장남

권김현영 /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   sidestory101@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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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가 뭐길래

된장녀

일명 “된장녀” 열풍이 불고 있다. 사치스럽고 명품을 좋아하며 스타벅스 커피에 환장하고 절대 구내 식당에 가지 않는다고 알려진 된장녀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세대와 성별만 들어가면 의미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언론과, 여자 씹는 얘기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 가는 남성 네티즌들이 만나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이전에는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변을 방치하는 등 개념을 상실했다는 의미에서의 “개똥녀”, 월드컵 응원전 때 섹시하고 귀여운 외모로 떴던 “엘프녀” 등이 있었다.
“된장녀”라는 명칭에는 잉글리시 스펙트럼 사건처럼 백인 남성들과 만나는 여성들을 비하하다가 생겨났다는 동경질투설, 누군가 한 여성클럽 게시판에 “젠장맞을 여자들”이라는 주제로 올린 글을 시작으로 젠장->덴장->된장으로 변해갔다는 구개음화설, 인조이재팬 등 일본 사이트에서 한국인들을 통칭 “된장”이라고 부르는데서 시작되었다는 외세침략설, 사치스럽고 이기적인 여자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는 두변혼동설 등이 있다. 어떤 설이 적확한 기원인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인다.
흄은 어떤 행위가 발생되는 데에는 인과관계 때문이 아니라 개연성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견 미래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째서 어떤 행위들은 발생하지 않는가를 증명해 보이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지하철에서 무례한 개똥녀가 있다면 지하철에서 남을 희롱하는 성희롱 전차남이 있어야 할 것이고, 황금만능주의로 된장녀가 소환되었다면 마땅히 도박과 성매매 등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도박남, 섹스중독남에 대한 이야기도 소환되어야 할 것이다. 개똥녀, 엘프녀, 된장녀가 모두 여자들인 것은 여자들이 원래 무례하거나, 섹시하거나, 이기적이고 사치스럽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행위들이 개연적이라고 의미를 붙이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모종의 정치적 의도란, 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에 대한 규제의 재생산이다. 무례하고 사치스러운 여성들은 언론과 남성들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귀엽고 섹시한 여자는 숭배된다는.


소비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 정치
된장녀 열풍에 숨어있는 것은 이러한 성정치 뿐만이 아니다.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으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외모에만 관심이 있는 된장녀는 여성과 소비, 여성과 돈에 대한 남성화된 자본주의의 일면을 보여준다. 본인이 번 돈도 아니면서 허영심있는 소비행위를 한다고 규탄하는 남성들은 더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아오면서 역사상 호의호식을 거듭해왔던 장남들의 상속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된장녀가 정말 상류층 여성들이었다면, 고작 스타벅스 커피와 명품 정도에 자신의 계급성을 드러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격받는 된장녀의 분류가 좀 더 명확해진다. 자신의 생활수준, 벌이수준 이상의 소비를 하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화장품과 옷을 사는데 써버리는 젊은 여성들을 한심해하는 세태는 서구 문물이 개방되던 191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신여성들 대부분도 이렇게 소비주의 작태를 몸소 실험한다며 규탄의 대상이 되었고, 신용카드 불량자를 구제해야한다는 정책이 수면 위에 떠오를 때 사람들이 “이런 애들이 화장품 산 것까지 국가가 해결해줘야 하냐”는 반발이 있기도 했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스타벅스에는 문화가 있다”고 얘기해도, 자신의 몸을 가꾸기 위해 철인 3종 경기부터 비싼 헬스클럽 회원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오세훈 시장에 대해 대중은 60%가 넘는 유례 없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환영했다. 이때 반대파로부터 골이 비었다는 비난을 받은 것은 오세훈이 아니라 외모에 혹해서 시장 선거에 임한 소위 “강남아줌마”들이었다.
남성들의 소비는 결코 소비 자체로 환원되지 않는다. 남성의 소비는 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휴식이나 권리로 받아들여지고, 여성의 소비는 잉여로 받아들여진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남성에 육박하건 안 하건, 여성들은 남성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흡혈귀들로 보여질 뿐이다.


고추장남의 열등감
하지만 이런 식의 여성들의 소비행위에 대한 남성들의 짜증스러움과 환호에 그런 여성들을 욕망하는 “고추장남”(일명 촌스러운 남자)으로서의 분노가 숨어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알뜰살뜰한 고추장남들은 된장녀들의 시선에 의해 “촌스럽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점은 고추장남들은, 고추장녀들에게 끌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83%가 화장하지 않은 여자들을 게으르다고 생각한다는 한 여성잡지의 가십성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성실한 고추장남의 목표에는 다소 이기적이고 허영심이 있더라도 몸매와 얼굴이 “착한” 여성들과 연애를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서 고추장녀들은 좌절을 느낀다. ‘공부해서 뭐해. 돈 벌어서 뭐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 이런 심정으로 고추장녀들이 세련된 외모를 가지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타고나게 부유하지 않은 고추장녀들은 성실한 생활을 접고 세련되고 다소 이기적이며 허영심 많은 태도를 수용함으로써 계급이동을 꿈꾸는 “된장녀”들로 변신을 꿈꾸거나 실행한다. 그러니, 나도 개연성을 가지고 인과관계라고 우긴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된장녀”는 고추장 된장 할 거 없이 남성들이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것에서부터 기인했다고 말이다.


p.s 사족이지만, 4,000원짜리 커피가 비싼 건 인정하지만, 수 만원에서 수십 만원까지 술로 탕진하는 건 왜 대체 “과도한 소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똑같은 커피인데 자판기에서 200원 주고 뽑아먹을 걸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은 문방구에서 당신의 손에 맞는 펜을 사기 위해 150원이면 살 수 있는 모나미 볼펜을 제치고 2,000원짜리 펜을 산적도, 1900원짜리 삼겹살 대신 와인에 절인 8,000원 짜리 삼겹살을 먹은 적도 없을까? 단 한 가지도 자신의 취향을 위해 돈을 좀 더 지불한 적이 없는 사람 별로 없다. 자본주의가 개인성을 소비취향을 드러내도록 고무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엄청난 소수이다. 그리고 그 훌륭한 사람들은 이렇게 된장녀 논쟁에 열불내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도 스스로 부끄러워서 내뱉지 않는 말은 안 하는 것이 낫다. 생각은 많이 하는 것보다, 깊이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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