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블로거TO블로거
줄자 같은 블로거를 알고 있다.
레이스톨님의 블로그(http://laystall.egloos.com)

_푸훗_ / 블로거   http://graymenta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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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명 債映, 닉네임 laystall.

債映에 처음 접속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런 설명 없이 一 二 三 四라고만 표시된 메뉴였다. 레이스톨이 그린 속도제한표지판군과 속도감시카메라양의 드문드문하고 어설픈 연애담이었는데 발상이 재밌었다. 뭔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재미난 발상을 기록(?)하는 블로거라면 뭔가 다른 이야기들도 잼있을 것 같아 블로그를 훑었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재밌는 사내군아!

‘채영’은 02, 23, 22, 04 이렇게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역시나 뜬금없고 불친절한 카테고리명들이라 포스트를 읽으며 알아서 성격을 추측해야 한다. 이걸 여기서 모두 밝히면 블로그를 탐구하는 재미가 없으니 패스(다. 난 카테고리의 쓰임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절대 몰라서가……), 깔깔.

이중 가장 많은 포스팅을 하는 카테고리는 02인데 일종의 ‘수다’를 떠는 곳이다. 자신이 노빠임을 깔테면 까보라지, 라는 식(이지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구)으로 밝히기도 하고, 그 날 하루 있었던 일, 읽은 기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이야기를 한다. 수다를 떠는 곳이니 만큼 주인장의 성격과 가치관 등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내가 본 레이스톨은 줄자 같은 블로거다. 필요할 땐 반듯함을 내세워 일을 처리하지만 평소엔 반듯함을 작은 통 안에 말아서 감추고 있는 줄자. 둥글고 직선인 줄자. 딱딱하고 유연한 줄자. 상반되는 특징을 모아 꼭 필요한 용도로 재탄생된 줄자처럼 블로거 레이스톨은 이율배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인 특징이 있다고 하여 그가 이율배반적이거나 모순을 지닌 블로거는 아니다(라고 쓰니 뭔가 이상하지만, 흠흠).

이런 레이스톨의 블로그는 예기치 못한 감동을 가끔 선사하는데, 일례로 060409 먹어봤더니 돌은 안 씹히더라가 그렇다. 장을 보고 오신 어머니를 도와 차 뒷좌석에서 쌀푸대를 꺼내다 ‘샤라라라라라라’하고 쏟아져버린 쌀을, 짐을 옮긴 후 다시 주워 담아오는 이야기다. ‘야밤에 3mm 빡빡이가 온 몸에 불빛을 받으며 초록색 빗자루와 회색 쓰레받기를 들고 땅에 흩어진 쌀알을 쓸어 담고 있는 풍경’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너무 이쁘고 감동적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쌀 몇 톨을 굳이 내려가 주워 담아올 생각을 하는 청년이 얼마나 있을까. 부모님이 담아오라고 해도 ‘쪽팔려-’라며 신경질 낼 젊은이들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또 레이스톨은 기사나 덧글, 대화 등을 블로그로 옮길 때 텍스트를 긁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화면을 이미지로 가져온다. 051014 나라는 꽃이여, 개그롭게 져라에서 잘 보여주는데 이미 네티즌의 성지로 발전한 ‘차가운 맥주가 급할 땐 얼음을 넣어 마셔라’라는 요지의 기사를 재구성해 포스팅한 것이다. 어이없는 기사에 이은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미지 채로 가져와 진지하게 구성한 포스트는 정말 개그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덧글들의 생동감과 능청을 떨고 있는 레이스톨이 느껴진달까. 푸훗.

債映은 건실한 청년(본인은 아니라지만, 일단) 레이스톨의 일상잡담과 생각을 글과 이미지로 풀어내면서 수다를 떠는 곳이다. 가끔 주인장이 용감해지면 이웃 블로거에게 아끼는 만화책 한 세트를 선물하기도 하니 주인장과 친하게 지내면 나쁠 게 없다가 아니고 좋은 거다. 어쨌든 자신을 ‘쓰레기장’이라고 칭하며 생산적인 수다를 떨고 있는 이 청년은 전생에 줄자였음이 분명해. 유연하면서도 반듯하고 치수를 잴 땐 진지하고 휘리릭 감길 땐 수줍어 보이기도 한 줄자- 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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