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8호(200610) 나와
경계인, 지구를 지킨다!
블로거 기자 리장 (http://blog.jinbo.net/save_nature)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조회수: 4482 / 추천: 67

술도 잘 안 마시고, 고기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러니 요즘 유행하는 ‘맛집 탐방’은 남 이야기. 자동차를 타고 여행 다니는 것도 별 관심 없다. 자전거를 몰며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닐 뿐. 책을 사 모으는 취미도 없다. 도서관의 책이 다 자신의 책이니까. 혈액형은 흔히 ‘소심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A형. 이 사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의 불꽃 튀는 현장을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기록한다. 세상 모든 것은 그에게 감동의 느낌표이다. 그래서 삶이 늘 아름다운 소풍 같은 리장을 인사동의 <귀천>에서 만났다.

“기자요? 하하하. 그런 것 아니에요.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요.”
기자 활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대략난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장은 현재 다양한 이름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 블로거 기자, SBS 유포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 그리고 진보넷, 다음, 네이버, 이글루스 등에 있는 자신의 블로그에 매일 새로운 기사와 글을 올린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그는 기자로 불리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단체나 조직 또는 기자나 활동가라는 이름에 얽매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굳이 방점을 찍는다면 자신은 ‘자유로운 경계인’ 같다고 말한다.

나 기자 아니에요

리장이 블로그에서 글을 쓰게 된 것도 경계를 허무는 경계인으로서 시작한 것. 새만금 방조제 사업을 막는 운동을 하면서 그는 오프라인 중심의 활동에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리 촛불집회를 하고 방조제에 가도, 정작 새만금을 살려낼 힘이 있는 시민들은 새만금을 알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A형이라(?) 주위 사람들을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러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려봐라.”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았다. 세상을 향한 경계 허물기. 그의 블로그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대추 분교가 허물어진 5월 4일. 며칠 후에 평택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4대 종단 공동 기도회가 있었고 리장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당시에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고, 그 글은 미디어 다음의 기사로 채택되었다. 그때부터 블로거 기자 리장의 본격적인 활동이 펼쳐진다. 그가 쓴 유사 휘발유 기사(<한적한 도로변에서 '은밀히' 판매되는 유사휘발유>, 2006. 8. 30.)는 미디어 다음에서 특종상을 받았고, KBS 1TV의 <세상의 중심>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털과 언론사에서 자신에게 부여하는 ‘기자’라는 이름에 대해 비판적이다.
“쉽게 규정하려고 ‘기자’라고 표현을 하지만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뉴스의 소재들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무턱대고 전화해서 소재를 찾아달라는 기자나 작가들도 있어요. 블로거가 이용당하지 않고 이용하는 식으로 잘 대처를 해야죠.”
밖에서 아무리 발로 뛰어도 안 되는 것이 온라인, 특히 블로그를 통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는 당당하다!

리장은 스스로 블로그 중독이라고 일컫는다. 주변의 모든 것을 뉴스로 만들 수 있기에 종종 밤을 새워가면서 글을 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나둘씩 늘린 블로그도 이제 11개에 이른다. ‘왜 이러지?’ 하면서도 끊을 수가 없다.
매일 엄청난 분량의 글을 쓰기에 대충 대충이지 않을까. 하지만, 리장은 꼼꼼하기로 소문난 A형!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고 이미지 중심으로 글을 편집한다. 그가 쓴 기사는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 독자들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링크들로 꽉 채워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회에라도 나가면 현장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 채운 글을 1신, 2신, 3신의 형태로 갱신하며 블로그에 올린다. 1인 미디어도 이 정도면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에게 블로거 기자로서 다가가는 일은 어렵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사행성 성인오락게임인 ‘바다 이야기’가 신문지상을 도배하고 있을 때였다. 이전부터 동네에 성인오락게임 업소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것을 의아히 여겼다. 사건이 터지자 업소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다. 한 가게의 굳게 닫힌 문을 사진기에 담고 있는데, 떡 벌어진 어깨를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다짜고짜 어디서 나왔느냐고 캐묻기 시작했다. 동네 토박이로서 꿀릴 게 없었지만 리장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그가 찍으면 안 되냐고 반문했더니, 그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형님~! 나와 봐요!”
“블로거 기자네 시민기자네 해도, 실체가 없는 거예요. 언론사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이 대답 잘 해줘요. 그런데 ‘다음 블로그의 리장입니다.’하면…. 명함이나 타이틀이 없으면 거부감 갖는 사람들이 많죠. 그러다 보니 블로거가 기사를 쓰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소재에 한계가 생겨요. 여행, 맛집 이야기만 하게 되고. 저도 단체 활동을 통해서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시사적 이슈와 관련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지만 몇 차례 되지 않아요.”

기존 매체와 다른 글쓰기 방식 때문에 기사를 편집하는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개인감정이 지나쳐서 안 된다.’, ‘정치인의 실명이 들어가서 안 된다.’ 등등. 이 정도는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 SBS는 연락도 없이 마음대로 편집을 해버리고, 오마이뉴스는 소재 선택에서부터 기사를 송고하는 것도 힘들다. 전문성이 없는 글쓰기라는 비난도 듣는다.
“아마추어니까 당연하잖아요. 기존의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영역이에요. 그 역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요. 아마추어적인 기사가 공감을 얻는 부분이 있고, 프로적인 기사가 공감을 얻는 부분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빨갱이도 되고, 착한 공무원도 되고

신문과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에, 그의 글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항상 극과 극을 달린다. 평택 문제나 FTA를 다루는 글에는 항상 빠지지 않고 ‘빨갱이’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원조 족발 집이 어디인지 추적(?)하는 글에는 ‘나 이것 너무 좋아해요.’, ‘잘 봤어요.’라는 글이 수두룩했다. 몰아세우거나, 치켜세우는 분위기에만 익숙한 그가 얼마 전 놀라운 경험을 했다. 1년간 모은 적금 이야기(<정직하게 모은 목돈이 '29억'보다 가치 있는 이유>, 2006. 9. 17.) 덕분이었다.
“별로 의식하고 쓴 글도 아니에요. 그냥 적금 타니까 기분이 좋아서 쓴 건데…. 얼마 전에 철도청 직원이 29억 원을 횡령해서 강남 유흥가에 뿌리고 다닌 일이 뉴스가 된 적이 있어요.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함께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이전과는 달랐어요. ‘교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댓글에 자기 경험을 쓴 사람들도 있고,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당신 같은 공무원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적과 동지의 구분밖에 없어 보이는 인터넷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이끌어 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하회탈처럼 넉넉하게 웃는 리장의 모습을 보면 그가 쓴 글의 따뜻함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환경, 평화, 정치, 미디어에서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길이 닿지 않은 이슈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직 말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장애인 이야기다. 얼마 전 제6회 전국시민운동가대회에서 만난 ‘중증 장애인 독립생활 연대’의 이정신 간사를 만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이야기를 드렸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까지 소수자 인권 문제는 다뤄본 적이 없어서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선 그 단체를 방문해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리장의 레이더는 이미 작동 중이다. 인터뷰 전날 그는 지하철 내 점포들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번 빠지면 무섭게 몰두하는 그의 집중력이 사람과 세상에 대한 풍부한 감수성을 키운 듯하다.

어머니 지구를 지켜라!

리장의 블로그는 모두 ‘어머니 지구를 지켜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환경 단체인 ‘Earth First’가 외치는 구호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우선이며, 어머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타협도 안 한다(No Compromise in the Defense of Mother Earth!)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리장은 산 속에 텐트를 치고, 밥이 없으면 도토리라도 먹어가며 사는 생활을 꿈꿨다고 한다. 자연을 파괴하고, 그 자신마저 갉아먹으며 질주하는 인간 문명이 싫었다. 그가 보기에 ‘지속 가능한 발전’은 형용 모순이다. 환경 운동 단체를 그만둔 것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공부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잡으면서 환경 운동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쉬울 것 같지 않다는 우려에 리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을 했다.
“스콧 니어링 부부를 봐요. 굳이 조직에 몸을 담고, 서울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잖아요? 요즘은 그러지 않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이 자유로우니까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어요. 어머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제 삶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지구를 지키는 것은 슈퍼맨도, 마징가Z도 아닌 리장과 같은 사람들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아닐까? 그가 걸어갈 삶의 여정이 우리 사회 환경 운동의 지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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